[사설] 정책 혼란에도 책임지는 이 없는 정부

입력 2015-02-05 02:36
박근혜정부에는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 국가정책이 오락가락하는 대란(大亂)이 발생해도 구렁이 담 넘어가기 식으로 지나간다. 내각이나 청와대에는 광범위하게 무책임과 무소신, 무능력이 자리하고 있다.

건강보험료 개편 방향이 또 정반대로 바뀌었다. 지난달 28일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은 건보료 부과체계 개선기획단이 1년6개월 동안 추진해 왔던 개편 방안을 느닷없이 백지화시켰다. 그것도 개편안 발표 하루 전이었다. 그리고 6일 만에 보건복지부는 고위 당국자 입을 통해 연내 재추진으로 다시 뒤집었다. 재추진 이유가 더 가관이다. “당에서 재추진하겠다면 따를 수밖에 없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하라니까 그냥 다시 하겠다는 것인데, 정말 어이가 없다. 구멍가게도 이렇게 하면 망한다.

우왕좌왕하는 1주일 남짓 사이에 조금이라도 개편안에 영향을 줄 만한 어떤 요인도 발생하지 않았다. 다만 여론의 질타가 있었고, 여당 대표와 새로 선출된 여당 원내대표의 비판적 지적이 있었을 뿐이다. 건보료 개편 본질과는 상관없는 외적 요인만 있었다는 얘기다. 그런데도 왜 중단했는지, 왜 다시 추진하는지 아무런 설명도 없고 책임지는 이도 없다.

건보료 개편 혼란상은 일개 당국자나 장관 선에서 결정된 것이 아니다. 공직사회 분위기를 감안한다면 더 윗선에서 지시하지 않고는 일어나지 않을 일이다.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다. 무책임과 무소신의 장관과 이하 공무원들도 문제지만 뒤에서 시켜놓고 책임은 피해가는 게 더 큰 문제다.

비단 건보료 개편뿐만이 아니다. 연말정산 대란도 마찬가지다. 세제개편안은 기획재정부에서 2013년에 만들어진 것이다. 세세한 것은 실무급에서 만들었다 하더라도 구체적으로 입법화되는 과정에서 정부와 청와대, 여당에서는 정책적·정무적 판단과 점검을 한다.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예상이 완전히 빗나갔다.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할 사태임에도 대통령은 ‘홍보 부족 탓’으로만 돌렸다. 그리고 임기응변 대책만 나왔다. 무책임하다.

무책임 무소신 무능력은 정부에만 있지 않다. 집권세력 전반에 있다. 대선 공약인 경제민주화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보이지 않는다. ‘증세 없는 복지’는 여당 대표의 국회 대표연설에서 “불가능하며, 국민을 속이는 것”으로 규정됐다. 대통령이, 집권세력이 국민을 속인 꼴이 됐다. 이 지경이 됐는데도 정권 어디서도 책임지겠다는 사람은 물론 어떤 설명이나 사과도 없다. 국민들이 그렇게 하찮은 존재인가. 책임지는 것이 꼭 인사 조치만을 얘기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극심한 혼란에 대해서는 ‘어느 부분이 잘못됐다’고 설명한 뒤 책임 있게 사과하고, 개선안을 내놓는 게 국민에 대한 예의다. 청와대는 무책임에 대한 시중의 분노가 어느 정도인지 잘 살펴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