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한헌수] 통일한국의 꿈, ‘세월호’에서 시작하자

입력 2015-02-05 02:47

2014년 4월 16일 아침, 대한민국은 뒤집힌 지 몇 시간 만에 코끝만을 물 밖에 남겼다가 사라져가는 거대한 여객선과 함께 침몰하고 있었다. 속수무책으로 가라앉고 있는 세월호의 모습은 해방 후 70년 동안 산업화와 민주화, 그리고 선진화를 거쳐 이루어 놓은 대한민국의 실상을 여실히 보여주는 듯 했다.

충격은 이전의 어떤 것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컸다. 국민 모두가 “대한민국은 세월호 이전과 이후로 구분될 것이다”고 다짐했을 정도였다. 나도 이번에는 그렇게 될 것으로 믿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 또한 지나가리!”라던 솔로몬의 말은 이번에도 적중했다. 해가 바뀌어 2월에 접어든 지금의 모습을 보자. 정치권은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갔고, 국민들은 보육시설 교사가 네 살배기 아이에게 주먹을 날리는 동영상을 반복하여 보아야 했다. 세월호는 사라졌고, 대한민국은 세월호 이전과 이후로 구분되지 않았다.

지난해 벽두에 대통령이 ‘통일대박’을 이야기하자 온 국민은 잊어버린 꿈이 되어가던 통일이 우리의 현실적인 목표임을 확인했다. 그리고 수많은 질문들을 쏟아냈다. 통일을 어떻게 준비해야 하나? 통일은 언제 이루어질까? 우선 해야할 일이 도대체 무엇일까?

통일에 대해 생각할 때 이 같은 근본적인 많은 질문들이 제기됐던 것은 우리가 살아가면서 통일을 제대로 준비해오지 않았음을 말해준다. 통일을 목표로 살아가는 시대가 통일시대인데, 그 통일을 위한 참된 준비가 우리에게 없었다는 말이다.

독일은 우리와 같은 해에 분단되어 1989년에 물리적 통일을 이루었다. 그런데 그로부터 25년이 지났지만 독일의 화학적 통일은 아직도 85%만을 이루었을 뿐, 여전히 통일을 이루어가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고 한다. 이 사실은 우리를 당황스럽게 한다. 우리는 어디에서부터 통일시대를 열어야 하는가.

통일한국의 꿈을 우리의 변화에서 시작하자. 통일한국은 남도 북도 변해야 얻어진다. 지금 우리의 통일 노력은 북을 변화시켜 우리가 원하는 모습으로 만들려 하는데 집중되어 있지 않은가. 그러나 그런 노력만으로는, 변해야 할 우리의 부분을 바꾸는 노력이 더해지지 않는 한, 아무 소용없는 헛된 수고로 끝나 버릴 것이다.

변해야 할 우리의 모습을 세월호의 교훈에서 찾아보자. 세월호 참사를 만들어냈던 것들을 하나씩 찾아내어 그것을 변화의 과제로 삼자.

세월호 참사를 만든 핵심 주범은 오늘의 한국을 이룬 고속성장 과정의 이면에서 독버섯처럼 자라난 대충주의와 봐주기주의다. 산업발전 40년을 달려오면서 ‘빨리빨리’로 대변되는 대충주의는 우리의 유전자로 굳어질 정도가 되었고, 봐주기주의는 그 촉매제로 작용했다. 학연과 지연, 그것도 아니면 뇌물을 주고받는 관계를 만들어 서로 봐주기를 했고, 그 가운데 온갖 사회 부조리가 싹텄다. 그런 관계에 들어가지 않은 사람들은 산업화의 결실을 나누어 먹는 식탁에 참여할 수 없었다. 이런 대충주의와 봐주기주의를 낳은 성과지상주의가 통일한국을 위한 변화의 시작점에서 넘어야 할 첫 번째 장벽이다.

또, 자기와 다르다는 이유로 차별하고, 약한 자를 지배 대상으로 여기며, 남의 시선이 없으면 검은 거래도 눈감아주고, 나의 이익 앞에서는 다른 사람의 생명조차도 아랑곳하지 않는 우리 사회의 어두운 모습을 극복해야 한다. 다시는 세월호를 만들지 않겠다는 다짐으로 이런 변화를 만들어 간다면 통일한국의 길은 점점 또렷이 보일 것이라 생각한다.

통일 논의 자체가 살만한 세상인 통일한국 사회를 꿈꾸는 희망의 축제가 되어야 한다.

나는 통일한국이 국민소득 5만 달러 시대를 열어 가난으로 고통받는 사람이 없는 나라이길 꿈꾼다. 그리고 우수한 외국인 이주민들과 더불어 인구 1억명 시대를 열어 조화롭게 살아가는 나라이길 꿈꾼다. 우리의 청년들은 일본과 중국, 동남아를 넘어 세계가 좁다하며 개척에 나서는 나라이길 꿈꾼다. 통일한국이 만드는 어느 물건도 세계 최고의 품질과 안정성을 인정받는 나라이길 꿈꾼다.

통일에 대한 논의가 이제는 시민운동이 되기를 바란다. 모든 분야에서 대충주의와 봐주기주의를 추방하고 다름을 존중하며 정직을 지키고 생명을 존중하는 자세로 통일한국을 살아갈 훈련을 하자. 우리 사회 각 영역이 통일한국에서 어떤 모습을 이룰 것인지를 연구하고 이를 목표로 정해 실천하는 시민운동을 전개해가자. 대학에서, 교회에서, 사회단체에서 시작하여 이 나라 전체가 통일한국의 아름다운 모습을 향해 나아가는 그 일을 지금 시작해 보자.

품격 있는 통일한국을 꿈꾸고 그에 걸맞은 시대정신을 갖추어 갈 때 통일은 어느덧 우리에게 와 있을 것으로 믿는다.

한헌수 총장(숭실대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