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길] 무명 작가가 쓴 첫 책 ‘대박’… “제목이 한몫했죠”

입력 2015-02-06 02:17
책 한 권 내고 하루아침에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33세의 청년 채사장. 그는 “한국에서는 인문이나 교양이라는 말이 지나치게 무거워져 있다”며 가볍고 재미있는 인문학을 개척하는 중이다. 한빛비즈 제공
지난해 12월 출간된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이하 지대넓얕)은 여러모로 이례적인 책이다. 인문서로는 아주 오랜만에 베스트셀러 종합순위 상위권에 올라 있다. 나온 지 두 달도 안 지났는데 벌써 6만부가량 팔렸다. 출판사에서는 앞으로 한두 달 안에 10만부 돌파가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인문서 시장에 대형 신작이 등장한 것이다.

‘채사장’이라는 필명을 쓰는 저자는 완벽한 무명이다. 이 책이 첫 책이다. 인문학자나 저술가도 아니다. 미혼에 33세. 출판사 투고를 통해 책을 냈다.

이 책은 언론에 소개된 적도 없다. 출판사가 특별한 마케팅을 한 것도 아니다. 저자가 운영하는 팟캐스트 방송을 통해 출간 소식을 알렸고, 책을 본 사람들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입소문을 퍼트리면서 열풍으로 번졌다.

‘지대넓얕’ 2권이 출간된 3일 저녁 서울 이태원 한 카페에서 저자를 만났다. 1권이 역사, 경제, 정치, 사회, 윤리 등 현실 세계의 인문학을 다루었다면 이번에 나온 2권은 철학, 과학, 예술, 종교, 신비 등 현실 너머의 인문학을 요리한다.

“2011년에 친구들과 제주도 여행을 갔다가 교통사고를 크게 당했어요. 사고 소식이 지역 방송에도 나왔죠. 2명이 죽었고 1명이 중상이었어요. 그 사고 이후 잠을 제대로 못 자고 불안감에 시달리게 됐어요. 내가 발 딛고 서 있는 세상이 너무 불안하고 위험하다고 느꼈죠. 이 세계가 명쾌해지면 내가 좀 안정되겠다 싶어서 글을 쓰기 시작했어요. 말하자면 나를 위해 글을 쓴 거죠. 남들에게 읽힐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진 못 했어요.”

채사장은 자신이 글로 정리한 얘기들을 주위의 고민하는 동료들에게 들려주기도 했는데 뜻밖에도 반응이 무척 좋았다고 한다. 지난해 4월 팟캐스트를 시작한 건 동료들이 부추김 때문이었다.

“친구들을 위한 힐링 방송으로 몇몇이서 팟캐스트를 시작했는데, 듣는 사람들이 꽤 많아지더라고요. 책을 내볼까, 그런 생각이 들었죠.”

그는 집에 있는 책들을 들춰서 출판사 전화번호를 알아냈다.

“하루에 10곳씩 투고하기로 했어요. 한 1000군데 보내면 그래도 어디선가 연락이 오지 않을까 기대하면서.”

그러나 출판사는 금방 구해졌다. 처음 원고를 보낸 10개 출판사 중 3곳에서 책을 내자는 연락이 온 것이다.

첫 책으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채사장은 “사람들이 왜 제 책을 읽는지 궁금하다”고 여러 번 얘기했다. 저자에게도 출판사에게도 출판계에서도 ‘지대넓얕 열풍’은 예상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한 가지 일치하는 분석이 있다면 제목의 힘이다. ‘넓고 얕은 지식’이라며 노골적으로 B급 정서를 풍기는 것은 점잖은 인문서 시장에서는 전례가 없었던 파격이었다.

“사람들이 제목을 좋아하는 것 같아요. 그동안 인문학 책들이 너무 독자들을 겁먹게 했다고 생각해요. 독자들에게 가르치려고만 했지 독자들이 그것을 가지고 놀게 해주지 못했어요.”

그는 “인문학도 쉽게 얘기할 수 있는데 변형이나 왜곡에 대한 공포 때문에 기존 저자들은 그렇게 하지 않으려고 했던 것 같다”면서 “이 책은 나를 위해 쓴 글이기 때문에 변형이나 해석을 많이 자유롭게 넣을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이어 “인문이나 교양의 본질은 넓고 얕은 지식”이고 “어른들을 위한 놀이”라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했다.

“개인에게 영혼의 문제는 너무나 크고 중요해요. 그에 비하면 일상은 사실 작은 것이죠. 그런데 우리는 일상에만 매달려 살아가요. 대화도 일 얘기, TV 얘기, 가족 얘기뿐이죠. 그러다 보니까 지적인 대화, 우리 영혼과 관련된 대화에 대한 갈증이 있는 것 같아요. 저는 그런 대화를 ‘지적 대화’라고 표현한 것이고, 지적인 대화를 위해서는 공통분모가 필요한데 그 공통분모가 인문학이고 교양이라고 생각하는 것이죠.”

글을 써봤냐는 질문에 채사장은 “책만 좀 읽었다”고 답했다.

“성균관대 국문과를 졸업했는데, 학교 공부가 별로 재밌지 않았어요. 졸업할 때까지 3년간을 도서관에서 책만 읽으며 보냈죠. 하루에 한 권씩 읽었던 것 같아요. 다들 취업 준비하고 그랬는데 저는 아무 대책도 없이 책만 보고 빈둥거렸어요. 현실감각이 없었다고 할 수 있죠. 어쩌면 현실을 피하고 싶었고, 그 도피처가 책이 되었던 건지도 몰라요.”

대학을 졸업한 뒤로는 돈 버는 일에만 매달렸다. 학원에서 논술강사를 했고, 주식투자나 부동산 임대업도 했다. 돈도 조금 모았다. 그러다가 2011년 교통사고를 겪었고, 그 사고는 그를 다시 책의 세계로 돌려놓았다.

‘지대넓얕’의 인기에는 독특한 제목, 쉬운 글쓰기 외에 방대한 영역을 아우르는 지적 편력도 한 요인으로 꼽힌다. 이 책을 출판한 한빛비즈의 편집자 권미경씨는 “여러 분야를 다 아우르면서 그걸 쉽게 쓰는 저자는 국내에 극히 드물다”고 말했다. 채사장의 비결은 역시 독서였다.

“저는 늘 지금 상태에서 가장 멀고 불편한 책을 읽으려고 했어요. 기독교인이라면 이슬람에 대한 책을 읽는 식이죠. 가장 불편한 책이 가장 좋은 책이라고 생각해요. 가장 불편한 책이 가장 빠르고 크게 자신을 확장시켜 줄 것이라고 믿어요.”

채사장은 본명을 밝히길 꺼렸다. 직업에 대해서도 “지금은 글 쓰는 사람”이라며 자세히 설명하지 않았다.

김남중 기자 n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