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열며-최현수] 보라매 사업, 제대로 해야

입력 2015-02-05 02:20

지난해 공군과 연세대가 공동 주최한 공군력발전 세미나에서 만난 제럴드 스타인버그 교수는 “전투기 생산은 최첨단 기술이 집약된 종합예술작품인 만큼 엄청난 노력을 쏟아부어야 한다”며 “이스라엘의 전철을 밟지는 말라”고 당부했다. 이스라엘 바일란대 정치학과 교수인 스타인버그는 이스라엘이 개발하려던 전투기 ‘라비’(히브리어로 젊은 사자라는 뜻)의 개발에 관여했던 인물이다.

이스라엘이 항공력을 앞세운 선제공격으로 아랍국가들에 대승을 거둔 ‘6일전쟁’ 후 프랑스는 이스라엘과 계약했던 전투기 수출을 돌연 중단했다. 아랍국가들의 압력 때문이다. 위기를 맞게 된 이스라엘은 독자적인 전투기 개발에 나섰다.

1986년 7월 이스라엘은 라비 시제기를 만들었고 그해 12월 첫 비행에 성공한다. 하지만 라비는 제대로 날아보지도 못한 채 다음해 7월 날개를 접어야 했다. 이스라엘이 전투기를 생산하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긴 미국은 연간 20억 달러씩 제공하던 원조를 중단하겠다고 위협했다. 미국 업체들은 항공기 부품값을 배 이상 올렸다. 설상가상 이스라엘의 재정형편도 악화됐다. 마음먹은 것은 꼭 이뤄내는 독한 민족으로 알려진 이스라엘도 눈물을 삼키며 국산 전투기 사업을 폐기했다.

미국과 러시아, 프랑스 등 강대국을 제외하고 독자적인 전투기 생산에 성공한 나라는 많지 않다. 가까운 나라 대만도 1982년 국산전투기 ‘경국(經國)’ 개발에 들어가 1993년 실전배치했지만 성능은 당초 기대했던 것에 미치지 못했다. 이 때문에 우리나라도 국산전투기(KFX) ‘보라매’를 만들겠다는 결정을 내리기가 쉽지는 않았다. 2002년 제197차 합동참모회의에서 독자적인 전투기 개발을 검토한 뒤 무려 12년 뒤인 지난해 독자개발키로 결정했다. 방위사업청은 오는 9일 이 사업을 주관할 체계개발업체 선정을 위한 입찰을 마감한다.

한데 벌써부터 걱정하는 소리들이 많다. 보라매 사업의 주체가 업체가 되는 게 바람직하냐는 것이다. 18조1000억원의 예산이 투입되는 만큼 업체에 맡겨놓을 일이 아니라는 지적이다. 경제성을 감안해 핵심기술을 가져오는 데 소극적일 수도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T-50’의 사례가 반복돼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고등훈련기 가운데 최고 성능을 지닌 T-50은 국내 업체와 미국 방산업체 록히드마틴이 공동개발했다. 형식은 공동개발이지만 실제로는 핵심기술 보유기업인 록히드마틴이 비행제어·항공전자 개발을 주도하고 우리 업체에 그 기술을 이전해 주는 전략적 제휴 형태로 진행됐다.

T-50사업은 선진국과 30년 이상 벌어졌던 항공기술 격차를 15년 내외로 축소시킨 성공사례로 꼽힌다. 하지만 당초 기대와 달리 핵심기술은 많이 이전받지 못했다. 우리 기술 수준이 낮아서 어쩔 수 없었던 상황도 있다. 하지만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우리도 첨단기술을 이전받을 만한 충분한 수준에 이르렀다. 그런데도 보라매 사업의 체계업체가 선정되기도 전에 에이사(AESA) 레이더와 표적획득장비, 임무컴퓨터 소프트웨어 등 핵심기술을 이전받기 힘들 것이라는 이야기들이 흘러나와서는 곤란하다.

어려움이 많다는 전투기 사업을 추진하는 것은 항공산업 발전을 위한 핵심기술을 축적하고 우리 군이 원하는 방식으로 전투기 운용을 하기 위해서다. 이것이 어렵다면 보라매 사업의 의미는 퇴색한다. 방사청이 반드시 핵심기술을 확보하겠다는 의지가 강한 곳을 선정해야 하는 이유이다.

최현수 군사전문기자 hscho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