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원준 칼럼] 프레임의 함정

입력 2015-02-05 02:37

몇 달 전 한 논객의 블로그에서 이런 글을 읽었다.

“사회적 싸움이란 무엇보다 프레임 싸움이다. 프레임 싸움에서 지면 이미 절반은 진다. 이를테면 ‘너는 좌익이다!’라는 공격엔 좌익은 나쁜 것이란 프레임이 들어 있다. ‘난 좌익이 아니다!’라고 대응하면 그 프레임에 말려들게 된다. 사상의 자유라는 프레임을 지키는 게 중요하다. ‘내가 좌익이든 아니든 좌익이 왜 문제인가. 사상의 자유도 모르는가!’라고 대응해야 하는 것이다. 세상이 바뀐다는 건 실은 프레임이 바뀌는 것, 기존의 가치관이 새로운 가치관으로 바뀌는 것이다.”

이 글을 다시 떠올린 건 연일 오르내리는 ‘증세 없는 복지’란 말 때문이다. 현 정권을 탄생시킨 이 구호에는 ‘증세는 나쁜 것’이란 프레임이 들어 있다. 세금 더 내는 걸 좋아할 사람은 없다. 하지만 싫은 것과 나쁜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다. 입에 써서 먹기 싫어도 몸에는 좋은 약이 있는 법인데 이 정권은 ‘싫은 것=나쁜 것’이란 등식을 세워버렸다. 그리고 스스로 만든 프레임에 말려들었다.

‘증세=나쁜 것’이라는 틀에 갇힌 정부

담뱃값은 올려야 하는 거였다. 수많은 통계가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었다. 2000원 인상이 가져온 금연 열풍은 결과적으로 그 타당성을 입증했다. 국민 건강을 위해 꼭 필요한 정책을 국민에게 납득시키는 일이 그토록 힘들었던 건 ‘꼼수 증세’란 비판 때문이었다. “결국 세금 더 걷으려는 거 아니냐!”는 반발엔 “세금 올리면 국민이 훨씬 건강해지는데 그게 왜 나쁘냐!”고 대응했어야 한다. 정부는 ‘국민 건강’ 프레임을 밀어붙이지 못한 채 어정쩡하게 “증세가 아니다”란 말만 되풀이했다. ‘증세=나쁜 것’이란 프레임에 갇힌 탓이다.

연말정산 파동이 ‘소급 환급’ 결론에 이르렀을 때 한 대기업 임원은 이런 말을 했다. “우리 회사 임원들은 전부 400만∼500만원씩 토해낼 상황이었다. 우는 소리도 못하고 끙끙 앓고 있었는데, 몇십만원 손해 볼 사람들이 아우성치니 돌려준다더라. 요즘은 표정관리 중이다.” 소득공제를 세액공제로 바꾼 방향은 맞는 거였다. 고소득자일수록 많은 세금을 부담하게 하는 정책이다. “봉급쟁이 지갑만 털어 가냐!”는 비판에는 “당신 세금이 좀 늘겠지만 당신네 사장은 훨씬 더 많이 털린다. 그래야 재분배가 이뤄질 것 아니냐!”고 설득했어야 한다.

국민들 설득하는 요령이 너무 부족하다

이런 말은 입도 떼보지 못한 채 서둘러 정책을 거둬들인 정부는 건강보험료 문제에서 프레임의 함정에 제대로 빠졌다. 건강보험료는 이 정권의 다른 구호인 ‘비정상의 정상화’가 가장 시급한 분야다. 매년 6000만건씩 민원이 쏟아지는데 어떻게 정상일 수 있나. 부과체계를 개편해서 보험료 늘어나는 사람들이 항의하면 “그럼, 똑같은 소득에 누군 5만원 내고 누군 20만원 내는 비정상을 계속하자는 거냐?”고 되물을 일이었다. 연말정산 사태를 “역시 돈 더 내라는 건 나쁜 거구나”라고 오독(誤讀)한 정부는 이를 지레 포기했다.

담뱃값부터 연말정산, 건강보험료까지 정부는 프레임 싸움에 번번이 실패했다. 이런 식이면 아무리 좋은 정책도 제대로 추진될 수 없다. 사회 곳곳에서 분출되는 수많은 갈등의 조정은 기대하기도 어렵다. 소통을 주문하는 건 나를 설득해 달라는 뜻인데 설득의 요령이 너무 부족하다. 보다 못한 여당이 거꾸로 정부를 설득하겠다고 달려들었다.

이제 어떻게 할 텐가? 증세를 할 것인가? 그 세금 내야 할 사람들은 “증세 없다 하지 않았냐!”고 따질 텐데? 복지를 줄이려 하나? 사회안전망에서 한발 밀려나는 이들에게 뭐라 말하려고? 선택은 정부의 몫이다.

다만, 그들을 설득할 준비가 돼 있지 않다면 그 선택은 다시 실패할 수 있다.

태원준 사회부장 wjt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