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사법재판소“인종학살 없었다”… 20년 논쟁 종지부 찍나

입력 2015-02-04 03:08
옛 유고슬라비아 연방의 해체, 분리독립 과정에서 내전을 치른 크로아티아와 세르비아 모두 상대방의 인종학살 혐의를 입증하지 못했다. 이로써 양측은 20년 전에 벌인 내전의 상처를 잊고 관계 개선과 평화를 모색할 계기를 찾을 것으로 기대된다.

국제사법재판소(ICJ)는 3일(현지시간) 내전을 치른 크로아티아와 세르비아의 인종학살 혐의 맞고소 재판에서 양측 모두 인종 학살의 혐의를 입증하지 못했다고 판결했다. 페테르 톰카 ICJ 소장은 세르비아군이 내전에서 많은 범죄를 저질렀지만 점령지에서 크로아티아인의 ‘전체 또는 일부’를 학살할 의도가 있었다는 증거를 크로아티아가 내놓지 못했다며 이같이 판시했다. 세르비아도 크로아티아가 벌인 ‘폭풍작전’에서 세르비아인의 인종학살 혐의를 입증하지 못했다고 톰카 소장은 판결했다.

1990년대 옛 유고연방 내전 때 독립을 원하는 크로아티아계와 연방의 존속을 원했던 세르비아계 간에는 격렬한 전쟁이 벌어졌다. 크로아티아는 1991∼1995년 분리독립 내전 때 세르비아군이 7000여명의 크로아티아인을 학살했다며 1999년 ICJ에 세르비아를 인종학살 혐의로 제소했다.

세르비아도 이에 맞서 크로아티아가 세르비아계 주민 20만명을 강제 추방하고 7000명을 살해했다며 2010년 크로아티아를 같은 혐의로 맞제소했다.

실제로 당시 유고 내전으로 최소 1만명 이상이 숨지는 등 양측의 서로에 대한 보복성 살상이 적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선고는 구속력을 갖춘 최종 판결로 양측 모두 항소 또는 재심을 청구할 수 없다. 이와 별도로 내전 과정의 잔혹행위에 대한 책임자를 재판하는 유엔 산하 유고전범재판소(ICTY)가 설치돼 있지만 그간 크로아티아나 세르비아 측의 전범 재판을 벌이지 않았던 만큼 이번 ICJ 판결로 크로아티아와 세르비아는 전쟁 범죄의 법적 논란에 종지부를 찍을 것으로 보인다.

톰카 소장은 내전 중 서로 수많은 범죄를 저질렀지만 이제는 피해자 보상에 나서는 한편 평화와 안정을 굳힐 수 있도록 화해에 힘쓰라고 촉구했다. AP통신은 “판결 이후 양측이 모두 만족스러운 판결은 아니지만 결과를 수용한다고 긍정적 입장을 내놓았다”고 전했다.

손병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