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평양서” 美 “3국서” 장소 싸움하다 판 깨져

입력 2015-02-04 02:50
성 김 미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와 북한 고위 관리 간 무산된 ‘양자 접촉’의 전말이 드러나고 있다. 2일(현지시간) 워싱턴 외교·정보소식통과 한반도 전문가들의 말을 종합하면 미국 측이 뉴욕채널을 통해 북한 측에 김 특별대표의 동북아 순방 기간 중 북한 고위 관리와의 회동을 제안한 것은 지난달 중순쯤이었다. 뉴욕채널은 유엔의 북한대표부를 통한 북·미 간 비공식 대화창구를 말한다.

지난달 2일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소니영화사 해킹 책임을 물어 고강도 대북 추가제재를 발표하는 등 미국 정부의 대북 기조는 강경입장 일변도로 흐르는 듯했다. 하지만 북한이 같은 달 9일 미국과 한국이 올해 합동 군사훈련을 중지하면 북한도 핵실험을 중단하겠다는 제안을 해오면서 북한의 진정성과 대화 의지를 ‘테스트’해 봐야 한다는 의견이 미 정부 내에서 제기된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미국은 공식적으로는 “한국과 미국 사이의 일상적인 훈련을 핵실험 가능성과 부적절하게 연결하는 북한의 성명은 암묵적인 위협”이라고 반박했다. 하지만 배후에서는 북한과의 ‘탐색적 대화’를 진지하게 검토하기 시작했다는 복수의 워싱턴 소식통들의 전언이다.

이에 따라 김 특별대표의 도쿄와 베이징 방문 일정이 확정된 지난달 중순 뉴욕채널을 통해 북한 측에 중국 베이징에서 비공개 회동을 갖자고 제안했다. 하지만 당시 김 대표의 상대가 김계관 북 외무성 제1부상이어야 한다고 지명하지는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동안 미국 측 6자회담 수석대표의 카운터파트가 김 제1부상인 것은 맞지만 그를 고집한 것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북한은 답변에서 평양에 김 대표 일행이 직접 들어올 것을 요구해 북·미 간 접촉은 난항을 겪었다. 협상 과정에 정통한 외교소식통은 “그동안 미국과 북한 간 양자대화는 물론 다자대화 대부분이 제네바나 베이징 등 제3국에서 열리는 게 관례였다”며 “현재처럼 북한의 비핵화 의지에 대한 의구심이 높은 상황에서 미 대표단에 바로 평양으로 들어오라고 요구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말했다. 미국 측은 북한이 진정한 대화보다는 미국이 고개를 숙였다는 정치적 선전에 더 무게를 두고 있다는 인상을 가졌고 이를 거부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다른 소식통은 북한이 김 대표에게 베이징에서 이용호 외무성 부상을 만날지, 혹은 평양에서 김 외무성 제1부상이나 강석주 노동당 국제비서를 만날지 선택을 요구했다는 워싱턴포스트(WP)의 보도는 사실과 다르다고 말했다.

워싱턴=배병우 특파원 bwb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