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 쿡기자] 공동주택이 많아지면서 이웃 간의 ‘층간소음’은 심각한 사회문제가 됐습니다. 살인을 포함해 충격적인 사건이 언론에 보도되는 게 하루 이틀 일이 아닙니다.
중학교 2학년 국어 교과서에 수록된 오정희 작가의 단편소설 ‘소음공해’는 층간소음 문제를 신랄하게 풍자하고 있는데요. 아파트에 살며 윗집의 소음 때문에 괴로워하던 ‘나’는 윗집에 슬리퍼를 사서 갖다 주면서 생각을 전달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윗집에서 소음을 낸 주인공은 걷지 못해 휠체어를 타는 여성이었죠. 그 사실을 몰랐던 ‘나’는 큰 충격을 받게 됩니다. 위층에 사는 사람이 누군지도 모른 채 ‘소음’만 문제시하는 현대인의 소통 단절의 씁쓸한 단면을 충격적으로 보여줍니다.
그런데 지난 1일 서울지방경찰청 공식 페이스북에는 층간소음이 사람을 살린 미담이 소개됐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소식을 접하고 “훈훈하다”고 입을 모았죠.
서울 화곡동의 한 다세대 주택에 사는 유모(72) 할머니가 주인공입니다. 지난달 27일 1층에 사는 유 할머니는 평소와 달리 2층에 사는 80대 김모 할아버지의 발걸음 소리가 안 들리고 조용하자 걱정이 돼 112에 신고했습니다.
“윗집에 지병이 있는 할아버지가 사는데요. 아무래도 안에서 돌아가신 것 같아요….”
서울경찰청 112 종합상황실에서는 곧바로 까치산지구대에 출동 메시지를 전달했습니다. 유 할머니의 신고를 받은 까치산지구대는 119에 구급차 지원을 요청하고 차량 진입이 어려운 좁은 주택가 골목을 뚫고 김 할아버지의 집을 찾아갔습니다.
경찰관들이 창문을 떼어내고 집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안에는 식사를 하지 못해 아사 직전의 할아버지가 반듯이 누워있었습니다. 할아버지는 인근 병원으로 이송돼 3일간 입원 치료를 받고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유 할머니의 이웃에 대한 작은 관심이 김 할아버지의 죽음을 막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유 할머니는 주위에서 칭찬이 쏟아지자 “이웃 간에 당연한 일을 한 것”이라며 겸손하게 말했습니다.
유 할머니의 사연은 층간소음 때문에 갈등을 빚고, 이웃과의 단절에 익숙한 많은 사람들에게 새로운 깨달음을 주는 계기가 됐습니다. 갈수록 각박해지고 시름이 깊어지는 지금,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은 얼굴도 모르는 이웃에게 조용히 걸으라는 뜻에서 슬리퍼를 갖다 주는 이기적인 배려가 아니라 이웃의 조용해진 걸음걸이를 걱정하는 살뜰한 관심이 아닐까요?
최영경 기자 ykchoi@kmib.co.kr
[친절한 쿡기자] “위층 할아버지 발소리가 안 들리네!”… 따뜻한 ‘층간 관심’ 한 생명 구했다
입력 2015-02-04 02: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