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도는 돈 돌지는 않아… ‘유동성 함정’에 빠지다

입력 2015-02-03 02:38

시중에 돈이 돌지 않고 있다. 정부가 경제 활성화를 위해 지난해 기준금리를 두 차례나 인하하는 등 돈 풀기에 나섰지만 가계와 기업은 요지부동이다. 경기가 나아지기는커녕 불확실성만 커져 가자 가계와 기업은 지갑을 열지 않고 상황만 살피고 있다. 이 때문에 금리 인하 효과가 나타나지 않아 경제가 함정(trap)에 빠진 것처럼 좀처럼 살아나지 않는 ‘유동성 함정’에 빠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현재 시중 통화량(M2)은 전년 같은 달보다 8.3% 증가한 2079조3000억원을 기록했다. 2010년 8월 이후 가장 높은 증가율이다. 그만큼 시중에 자금이 많이 풀렸다는 의미다. M2는 현금·요구불예금·수시입출식 저축성예금 등 협의통화(M1)에 MMF(머니마켓펀드)·2년 미만 정기예적금·수익증권 등 언제든 현금으로 바꿀 수 있는 금융자산을 합한 것이다.

지난해 한은이 기준금리를 0.25% 포인트씩 두 차례 낮추며 예금금리도 연 1% 후반∼2% 초반으로 낮아졌다. 초저금리에 시중 유동성은 어느 때보다 풍성해졌는데 기업의 실질적인 투자와 가계의 소비로 연결되지 않고 있다. 대신 MMF나 단기성예금 등 단기 부동자금으로만 돈이 몰린다. 2012년 말 666조3000억원이었던 단기부동자금은 지난해 11월 791조3768억원으로 껑충 뛰었다. 단기 부동자금 잣대로 활용되는 MMF 설정액은 지난 29일 현재 98조3000억원으로, 올 들어서만 15조9000억원이 늘었다.

지난해 11월 말 현재 은행권 예금은 1075조원으로 2013년 말(1010조원)보다 6.5% 늘었다. 이자와 물가상승률(올 한은 전망치 1.9%)을 고려하면 실질 금리는 마이너스 수준이다.

정부가 규제를 완화하며 부동산 시장 활성화에 나서고 있지만 아직 뚜렷한 회복세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 주식시장 역시 박스권을 벗어나지 못하며 부진한 면모를 보이는 상황이다. 국제경제 역시 불안하다. 국제유가는 연일 하락하고 있고, 미국의 금리인상 시기 역시 변수로 남아 있다. 그리스 새 정부 출범으로 유로존 탈퇴 가능성이 거론되는 등 불확실성이 높다.

한은 이주열 총재는 지난해 10월 “통화정책 무력화 단계를 뜻하는 유동성 함정까지 가지는 않았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HSBC은행 로널드 맨 이코노미스트는 지난해 11월 보고서를 통해 “한국경제가 기준금리 인하에 따른 기대효과 감소로 유동성 함정에 근접했다고 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한국금융연구원 박성욱 거시국제금융분석실장은 “유동성 함정을 이분법적으로 나눠 ‘이제부터 유동성 함정이다’라고 잘라 말할 순 없지만 한국은행의 통화정책 효과가 줄어들고 있는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과거에 비해 통화 완화가 민간에 미치는 영향이 감소했다는 설명이다. 박 실장은 “돈을 풀어도 단기부동자금으로 몰리고 경기가 회복되지 않는다는 건 우려되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박은애 기자 limitles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