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의회는 2013년 3월 15일 국어 발전과 보전의 기반을 마련한다는 이유로 광역지자체 중 처음으로 ‘강원도 국어 진흥 조례’를 만들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같은 해 4월 ‘강원도 국어진흥조례’를 우수사례로 지정해 전국 지자체에 전파했다.
하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부실하기 짝이 없다. 조례에는 5년마다 국어진흥계획을 수립·시행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지만 2년이 지난 지금까지 계획조차 마련되지 않았다. 조례 제정과 더불어 2013년 10월에 만들어진 ‘우리말 위원회’는 지난해 12월 한차례 열린 게 전부다. ‘공문서, 보도자료에 외래어와 한자어 등을 자제하고 쉬운 우리말을 사용해야 한다’고 규정해놓고 도청부서에 ‘글로벌’이라는 외국어를 사용할 정도로 허술하다.
다른 지자체도 마찬가지다. 충북도는 2011년 7월 지역의 각종 도서관을 지원하고 협력사업을 수행하기 위한 ‘지역 대표도서관’ 조례를 제정했다. 하지만 이후 아무런 후속 조치가 없는 상태다. 도 관계자는 “예산 문제 등으로 대표도서관 설립이 쉽지 않다”며 “기존 도서관을 대표도서관으로 지정해 내년부터 운영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광주지역 5개 자치구는 내 집 앞 눈 치우기를 위한 ‘건축물관리자의 제설 및 제빙 책임에 관한 조례’를 제정했으나 사실상 무용지물이다. 위반시 과태료나 벌금 등 제재조항이 없는데다 ‘눈이 그친 시간부터 3시간 이내에 제설을 완료해야 한다’는 애매한 규정 탓에 눈이 와도 제설·제빙작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참여도도 낮아 유명무실해졌다.
경북도의 ‘환경관리공사 설립 조례’는 2000년에 만들어졌지만 현재까지 공사가 없다. 천연기념물인 안동시 ‘용계동 은행나무’는 임하댐 건설로 인해 1994년 이식됐지만 ‘경북도 용계동 은행나무 이식보존 추진위원회 조례’는 지난 연말에야 폐지됐다. 경북도의회 곽경호 의원은 상위법 개정으로 폐지해야 하거나 정비해야 할 조례가 경북도 23건, 경북도교육청 17건인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이 처럼 한때 시류에 맞춰 불쑥 제정했다가 유명무실해지고 실체가 없는 ‘유령 조례’가 수두룩해 정비가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행정자치부에 따르면 지방자치단체 사무가 아니거나 상위법령에 위배되는 내용을 규정한 조례에 대해 중앙정부가 재의를 요구한 사례가 1995년부터 2013년까지 시·도는 167건, 시·군·구는 781건 등 총 948건에 달했다. 특히 재의요구에도 불구하고 문제가 있는 조례를 강행해 대법원에 제소된 경우도 시·도 58건, 시·군·구 89건 등 총 147건이나 됐다.
이에 따라 행정자치부는 올해 법제처와 함께 조례를 대대적으로 정비할 계획이다. 이달 중 조례정비 추진계획을 각 시도에 내려보낸 뒤 4월부터 조례정비 여부를 확인할 방침이다.
행자부 관계자는 “범정부 차원의 조례정비 추진체계를 갖춰 향후 상위법이 제·개정되면 조례에 즉각 반영이 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춘천=서승진 기자, 전국종합 sjseo@kmib.co.kr
정부, 지자체 ‘유령조례’ 정비 칼 뽑았다
입력 2015-02-03 02: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