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부구욱 한국대학교육협의회 회장 “국립대 뼈 깎는 자구 노력 뒤에 지원 바라야”

입력 2015-02-03 02:54
한국대학교육협의회 부구욱 회장이 지난달 20일 서울 금천구 대교협 사무실에서 국민일보와 인터뷰하며 대학구조개혁에 따른 대응책 등을 설명하고 있다. 부 회장은 “세계 200위권 안에 들어갈 가능성이 있는 국내 명문 사립대학은 등록금을 자율적으로 정할 수 있도록 하는 등 규제를 풀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곽경근 선임기자

대학가를 뒤흔드는 대학구조개혁이 본격화됐다. 정부는 A∼E등급으로 나눠 대학에 점수를 매길 채비를 마쳤다. 낮은 등급을 받으면 정원을 줄여야 하고, 궁극적으로 대학 자체가 사라질 수도 있다.

대학들도 사활을 걸었다. 변하지 않으면 퇴출이라는 생각에서 최근 ‘대학 5학년생 줄이기’가 뚜렷한 흐름으로 등장했다. 졸업 유예제를 없애 교육부의 평가항목 중 하나인 ‘학생 1인당 교수 비율’ 등에서 좋은 점수를 받기 위해서다. 하지만 학생들은 “취업도 안 되는데 사회로 내몰려고만 한다”며 반발하고 있다.

대학구조개혁은 대학생의 일상부터 대학 운영체계, 국가 인력양성 계획을 바꾸는 작업이다. 4년제 대학 협의체인 한국대학교육협의회(대교협)는 이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지난달 20일 서울 금천구 대교협 사무실에서 부구욱(영산대 총장) 대교협 회장을 만나 대학구조개혁에 따른 대응책을 물었다. 대교협 회장은 대학구조개혁에서 교육부 장관의 카운터파트(협상 파트너)이기도 하다. 지난달 16일 취임한 부 회장은 “대학이든 사회든 시야를 넓혀 ‘우물 안 개구리’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어려운 직책을 맡았다. 어떤 원칙과 기준을 갖고 있나.

“어려운 상황인 것은 맞다(웃음). 판단의 기준은 국익과 공익이다. 원칙은 합리성이라고 본다. 이를 토대로 정부와 대학사회 그리고 대학사회 간 합의를 이끌어내는 게 임무다. 국익을 구체적으로 얘기하면 국가경쟁력이라고 볼 수 있다. 우리는 일본 중국 등 이웃과 경쟁해야 하는 처지다. 일본은 10년 앞서 있고, 중국은 무섭게 추격하고 있다. 여기서 밀리면 설 자리가 없어진다. 우리가 가진 건 사람밖에 없다. 산업경쟁력에서 밀리지 않는 연구개발 인력을 많이 양성해 산업계에 공급하는 게 대학의 고유 임무다. 대학구조개혁은 이런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 (학령인구 감소에 따른) 입학정원을 줄이는 방식은 단편적이다.”

-경쟁력 강화를 위한 대학구조개혁 방향은.

“대학들이 무작정 정부 지원을 원하면 안 된다. 뼈를 깎는 노력을 한 뒤에 정부 지원을 바라야 한다. 국립대학은 지금 통폐합 말고는 뾰족한 해법이 없다. 정체돼 있어 신규 교수 채용조차 어렵다. 새로운 유망 분야가 나오고 산업계 수요가 있어도 국립대에서 교수를 채용해 연구개발을 활성화하기 어렵다. 현재 상태를 유지하기 버겁고 점차 쇠락의 길로 갈 수밖에 없다. 정부가 막대한 예산을 국립대에 쏟는다면 얘기가 달라지겠지만 예산 당국 입장에서 학생 수가 감소하는데 어떻게 돈을 더 줄 수 있겠는가. 국립대 스스로 돌파구를 마련해야 하는데 중복·유사 기능을 과감하게 통폐합하는 구조개혁에 나서야 할 시점이다. 유사한 기능의 국립대들이 각각 경쟁하는 상황에서 모든 대학에 일괄적으로 지원하기 어렵다. 국립대가 구조조정하면 자연스럽게 대학 내 학생 수도 줄게 된다. 1인당 교육투자비가 많아지고 교수 확보율도 늘어나면서 세계의 명문대학과 경쟁할 토대가 마련된다. 이런 상태에서 정부 재정지원이 확대돼야 한다.”

-사립대학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우리 사회가 바라보는 대학은 ‘우물 안 개구리’다. 세계 명문대학들로 시야를 넓혀야 한다. 그런 관점에서 세계 200위권에 들어갈 가능성이 있는 국내 명문 사립대학들을 대상으로 각종 규제를 풀어줘야 한다. 이런 대학들은 예외적으로 등록금 자율화를 해줘야 한다. 이를 위해 법개정 운동을 전개할 방침이다. 세계적 명문대들은 연간 등록금이 4만∼5만 달러에 달한다. 우리 대학들은 비싼 곳이 1만 달러에 불과하다. 배로 올려도 경쟁해야 하는 해외 대학과 비교하면 절반 수준이다. 등록금을 자율화한다고 배로 한꺼번에 올릴 대학도 없을 것이다. 그리고 정부가 인천 등 경제자유구역에 해외 대학을 유치하면서 엄청난 혜택을 주고 있다. 등록금 정책에서 예외도 인정해주고 있다. 국내 명문대학을 역차별하는 구조인 것이다. 학생을 뽑는 것도 대폭 자율성을 줘야 한다. 카이스트(KAIST·한국과학기술원)를 보라. 학생들을 자율적으로 뽑으면서도 잡음이 거의 없다.”

-비싼 학비 때문에 사회적 문제가 발생하고 있는데 등록금을 자율화할 수 있나.

“해외에 공부하러 가서 쓰는 돈이 한해 40억 달러에 이른다. 해외에서 수준 높은 교육을 받는 이들은 경제적 여건이 되는 학생들에 국한되는 것도 현실이다. 우리 명문 사립대를 세계적인 수준으로 성장시킨다면 이런 돈을 절약할 뿐 아니라 외국 유학생도 유치할 수 있다. 세계 200위권에 들어가는 대학 20개 정도는 예외적으로 등록금 자율화 조치를 해줘 도약할 기회를 마련해줘야 한다. 정부는 능력이 있지만 경제력이 안 되는 학생들을 집중 지원해야 한다. 지금도 국가장학금으로 4조원이 넘게 풀리고 있다. 가난하다고 공부를 못하면 안 된다. 국내에서 양질의 교육을 받도록 해 미래 인재로 성장한다면 전액 장학금인들 뭐가 아깝겠는가. 그리고 지금 당장하자는 게 아니다. 사회적 공감대가 필요할 것이다. 명문 사립대들이 10년 로드맵을 만들도록 하고 공신력 있는 기관에서 이를 평가해 가능성을 인정받으면 예외적으로 자율화 조치를 해주자는 주장이다.”

-대학들이 적립금을 쌓아놓고 등록금에만 의존한다는 비판이 많다. 대학들이 지출 구조를 효율화하고 투명화해야 한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안타까운 일이다. 일부 대학의 문제를 전체 대학과 연결지어 바라보는 것은 누구에게도 도움이 안 된다. 대학 적립금 문제는 이렇게 한번 생각해보라. 하버드대나 예일대 같은 곳은 적립금으로만 450조원을 쌓아놓고 있다. 구성원이 2000여명에 불과한 엠허스트대도 2조원을 쌓아두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적립금이 가장 많은 이화여대도 1조원에 못 미친다. 이대처럼 돈을 적립해 놓은 대학도 극소수이다. 대부분 대학이 재정난을 겪고 있다. 그리고 적립금을 풀지, 말지는 대학 경영의 문제로 외부에서 함부로 비판하는 것은 불합리하다. 총장이나 이사장 개인 돈도 아니다. 결국 학생들에게 쓰일 사회의 돈이다. 미래 교육을 위해서 적절하게 투자하도록 아껴놓은 돈인 것이다. 이미 우리 대학들의 투명성은 상당한 수준이다. 비리 대학은 극히 일부다. 비리 대학은 엄정하게 법집행을 하면 된다.”

-대학구조개혁으로 인문학과 순수 학문이 고사(枯死)할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인문학과 교수님들도 시각을 달리할 필요가 있다. 인문학적 소양을 갖춘 인재는 사회 모든 분야에서 반드시 필요하다. 인문학과가 줄어든다고 사회의 요구가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인문학과 교수님들이 인문학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느냐 아니면 교양 쪽에서 자신의 학과가 아닌 학생들을 가르치느냐 그런 차이만 있는 것이다. 외환위기 이전만 해도 고등학교에 이과반이 더 많았다. 이후에 이공계가 어려워지면서 역전됐다. 국가 장래를 위해서 우수한 이공계 인재가 더 많아야 한다. 지금은 인문계가 다소 비대한 상황이다. 인문학과 졸업자를 많이 배출하는 게 아니라 이공계 학생들에게 인문학적 소양을 갖추도록 해야 한다는 정부의 방침에 일정 부분 동의한다.”

이도경 기자 yid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