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교도관으로 1975년부터 30년을 일하다 2005년 홍성교도소를 끝으로 정년퇴직했다. 하지만 여전히 교도소를 드나든다. 교도소 안에 교회가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담 안 형제들을 만나기 위해서다. 대부분 무기수의 경우 찾아오는 가족이 없다. 가정 형편이 어려운 데다 가족들도 포기한 경우가 많다. 나는 교도관 시절부터 이들을 위해 영치금을 넣어줬다. 그때는 월급에서 조금씩 뗐고 지금은 매달 받는 연금에서 뗀다.
내가 만나는 무기수는 모두 6명이다. 한 달에 한 번씩 이들을 보러 간다. 벌써 10년이 넘었다. 6명의 나이는 40∼70세다. 이들과 형 동생 하며 지낸다. 갈 때마다 말씀으로 위로하고 수감생활을 묻는다. 방문할 때는 물론 양손 무겁게 간식도 챙긴다.
무기수 중 가장 나이 많은 인물은 박광성(가명·70)씨다. 올해로 15년째 복역 중이다. 치정에 의한 부인 살해 혐의로 기소돼 재판을 받았고 무기징역형을 선고받았다. 박씨를 처음 만났을 때 그는 손을 떨었다. 알코올 중독에 의한 손떨림 현상이었다. 세상을 비관하며 술에 취해 살았다고 했다. 교도관 시절부터 그를 만나면서 복음을 전했고 영치금을 넣어줬다.
지난달 그를 만나 영치금을 잘 쓰고 있느냐고 물었더니 의외의 대답이 돌아왔다. “안 써요.” 이유를 묻자 “혹시 나가게 되면 월세는 내야죠” 했다. 그동안 이렇게 저렇게 모은 영치금이 1000만원이 넘는다고 했다. 나는 놀랐고 한편으로 기뻤다. 사람이 변했던 것이다.
박씨는 “제가 밖에서 정말 큰 잘못을 저질렀어요. 날마다 죄를 뉘우치고 있습니다. 목사님 때문에 하나님을 알게 되어 기쁘고요. 교도소에서나마 반성하며 사는 게 감사할 따름입니다”라고 했다.
무기수들에는 특징이 있다. 이들은 모두 고집이 세다. 그리고 생각이 짧은 측면이 있다. 그러다보니 큰 사건을 저지르거나 연루됐다. 자신들도 그런 성질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스스로를 ‘앞뒤 없는 전차(지하철)’라고 불렀다. 전차나 지하철이 앞뒤 따로 없이 달리듯 이들 인생은 방향 없이 살아온 것이다. 이런 그들에게 희망과 방향이 생겨 다행이다.
무기수와의 만남 외에 나는 11명의 재소자를 위한 교리 공부도 병행하고 있다. 일명 ‘성경통신대학’인데 이 과정은 2011년까지 교도소 경비를 담당했던 경교대원을 위한 성경공부였다. 경교대는 법무부 소속 교도소 경비교도대로 3년 전 폐지됐다. 홍성성교도소교회에서 나는 이들 경교대원을 위한 성경공부 과정을 운영해오다 지금은 이를 재소자 성경공부로 이어가고 있다. 11명은 모두 모범수로, 성실히 성경공부에 임하고 있다.
나는 또 한 달에 한 번 재소자 신입교육도 맡고 있다. 일종의 교도소 생활 오리엔테이션인데 목사로서 신앙교육을 안내하고 있다.
내가 이렇게 은퇴 후에도 줄곧 교도소를 찾는 것은 재소자들의 눈과 발이 되자는 다짐 때문이다. 희망 없는 그들에겐 길잡이가 필요하다. 그들이 무기수이든 형기를 마치는 출소 예정자이든 중단된 인생을 잇기 위한 도움이 절실하다.
내가 교정공무원이 된 것은 마산보호관찰소장을 끝으로 정년퇴임한 친형님의 영향이 크다. 20대 시절 형님과 함께 기차를 탔는데 밖에서 누군가 돌을 던졌고 돌은 어느 여성의 몸에 맞았다. 이를 본 형님은 기차가 출발하고 있는 도중에 몸을 던져 뛰어내렸고 돌을 던진 사람을 붙잡았다. 그 모습이 어찌나 멋있던지 나는 형님처럼 교도관이 되고 싶었다.
정리=신상목 기자 smshin@kmib.co.kr
[역경의 열매] 김봉래 (2) 교도소 담 안의 형제들도 복음에 갈급해 한다
입력 2015-02-03 02: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