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적응기 마친 北이탈주민 창업 큰 관심

입력 2015-02-02 02:13

북한이탈주민 A씨는 최근 은행 자동입출금기(ATM)에서 돈을 찾으려다 가슴을 쓸어내렸다. 5만원권과 1만원권 액수가 헷갈려 숫자를 누르지 못했는데 갑자기 기계에서 “삐∼삐∼”하는 소리가 울렸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쏠리자 A씨의 마음은 더욱 다급해졌다. 은행 직원이 다가와 통장을 빼줬지만 A씨는 안절부절못했다. A씨는 1일 “내가 기계를 잘못 눌러 고장이 났다고 생각했다. ‘경찰이 오면 뭐라고 말해야 하나’ 걱정뿐이었다”며 “집에 가자니 뺑소니범이 될 것 같아 불안한 마음에 다시 직원에게 확인한 후에야 집에 돌아왔다”고 털어놨다.

A씨의 사례는 북한이탈주민이 한국에 와서 자주 겪는 ‘금융 장벽’의 단면을 보여준다. 이들은 익숙지 않은 은행 기기 사용과 복잡한 금융상품에 힘들어하고, 자신들을 관리대상으로만 보는 공권력의 시선에서 벗어나 당당한 경제주체로 살고 싶어 한다. 특히 한국에 온 지 3년이 넘은 북한이탈주민들은 은행 이용법 등 ‘기본적인 금융정보’ 외에 창업에도 관심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통일부와 관계기관이 북한이탈주민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복수응답)를 보면 3년 이상 한국에 체류한 이들은 필요한 금융정보로 ‘창업지원 프로그램’(42%)을 ‘은행 이용’(47%), ‘보험 가입’(46%)과 함께 높은 비율로 꼽았다. 가장 응답률이 높은 것은 ‘돈 관리와 노후준비’(76%)였다. 창업과 관련해 40%대의 긍정적 응답은 3년 미만 체류자(23%)보다 배 가까이 높은 수치다.

한국생활 적응기를 마친 북한이탈주민이 창업에 관심을 보이는 것은 정책 수혜대상에 머물지 않고 적극적인 경제생활을 하고 싶다는 욕구를 드러낸 것으로 해석된다. 은행 이용, 돈 관리 등 기본적인 금융생활 지식은 여전히 부족하지만 그들 스스로의 힘으로 한국에 뿌리내리겠다는 것이다.

이는 금감원이 이날 발표한 ‘금융이해력 조사’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한국의 일반 성인들은 금융지식(75.6점)은 풍부하지만 금융행위(59.0점) 및 태도(61.0점) 점수가 상대적으로 낮은 반면 북한이탈주민은 금융행위(51.2점)나 태도(56.2점) 점수가 지식(44.9점) 점수보다 높게 나타났다.

다문화가족의 경우도 맞춤형 교육이 필요하다. 관련 단체의 조사결과에 따르면 결혼이주여성들이 가장 원하는 금융교육은 인터넷뱅킹 및 ATM 사용법, 저축의 필요성, 체크·신용카드 사용법 순으로 나타났다. 한 관계자는 “이주여성들은 남편이 경제권을 가지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돈을 관리할 기회가 적고 본국에 송금하는 사례도 많다”며 “어려운 금융용어를 쉽게 설명하는 등 세밀한 금융교육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백상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