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를 사랑하는 사람들] ⑧ 창원 봉덕교회 강정식 목사

입력 2015-02-02 02:05
지난 27일 경남 창원 봉덕교회에서 만난 강정식 목사. 그는 “십자가를 직접 만들어 보면 자신이 짊어질 십자가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수 있다”며 “한국교회에 십자가 만들기 문화가 보급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창원=허란 인턴기자
봉덕교회 목양실에 비치된 십자가 작품들. 강 목사가 병뚜껑과 조개껍질로 만든 십자가(위)와 이 교회 한 청년 성도가 망가진 우산으로 제작한 십자가.
제보 전화를 받은 건 지난해 12월이었다. '십자가를 사랑하는 사람들' 시리즈를 통해 국민일보에 소개됐던 십자가 전문 사진작가 권산(44)씨의 전화였다. "폐품으로 십자가를 만드는 목사님이 있어요. 저처럼 자연 속 십자가 형상을 사진으로 찍기도 하고요."

그가 소개한 인물은 경남 창원 봉덕교회 강정식(55) 목사였다. 곧바로 강 목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는 "지금까지 만든 십자가가 300점은 넘을 것"이라고 했다.

"저뿐만 아니라 교회 성도들도 십자가를 만듭니다. 좋은 목재로 만드는 근사한 십자가는 아닙니다. 전문 작가들이 만든 십자가에 비하면 예술성이 떨어지죠(웃음). 하지만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십자가라는 점은 확실합니다."

‘폐품 십자가’에 담긴 신앙

지난 27일 강 목사를 만나기 위해 봉덕교회를 찾았다. 교회 건물 4층에 있는 목양실에 들어서자 벽을 가득 채운 십자가 100여점이 눈에 들어왔다. 대부분 강 목사가 만든 십자가였지만 성도들의 작품도 적지 않았다.

“여기 가시가 많은 나무로 만든 십자가는 교회 장로님이 만들었어요. 부활절 때 강대상을 장식한 탱자나무로 만든 겁니다. 저기 플라스틱으로 된 십자가는 제가 부서진 선풍기 날개로 제작했어요. 선풍기 날개 위에 아이스크림 뚜껑을 ‘열 십(十)자’ 모양으로 붙였죠.”

기상천외한 작품을 소개하는 강 목사의 이야기는 계속됐다. 케이크 상자에 조개껍질과 병뚜껑을 붙여 만든 십자가, 버려진 옷걸이나 철사를 주워서 만든 십자가….

“예수님 덕분에 저희가 세상에 쓸모 있는 존재가 됐듯 이들 십자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쓰레기였지만 저와 성도들의 손을 통해 쓰임 받는 물건으로 거듭났지요. ‘폐품 십자가’ 제작을 고집하는 이유는 버려진 것들에게서 영성을 발견할 때 느끼는 기쁨이 크기 때문입니다.”

십자가를 만들기 전까지 강 목사는 평범한 목회자였다. 경남 하동 출신으로 경상대 철학과와 장로회신학대학원을 졸업한 그는 경남 통영 통영교회(1995∼1998), 경북 영덕 금곡교회(1999), 경남 거제 소랑교회(1999∼2011) 등지에서 목회를 했다. 봉덕교회 담임목사로 부임한 건 2011년이다.

새 목회지로 온 지 약 1년쯤 지났을 때 우연히 십자가를 다룬 책을 읽었다. 십자가 수집가인 경기도 의왕 색동교회 송병구(54) 담임목사의 저서 ‘십자가 사랑’(2011)이었다. 이 책은 세계 곳곳의 다양한 십자가를 소개하면서 저자의 묵상을 곁들인 내용이다. 송 목사는 ‘십자가를 사랑하는 사람들’ 시리즈 첫 회의 주인공이기도 하다(2014년 7월 7일자 29면 참조).

“책을 읽고 나니 ‘내가 짊어져야 할 십자가는 무엇일까’라는 생각부터 들더군요. 그러면서 십자가에 대한 관심이 생겼어요. 송 목사님처럼 십자가를 수집하고 싶더군요. 하지만 해외에 나갈 기회가 거의 없으니 수집은 힘들고, 결국 ‘내가 십자가를 만들자’고 결심하게 된 거죠.”

강 목사는 2012년 늦여름 하동 본가에 내려가 가죽나무 가지를 주워 첫 십자가를 만들었다. 목공에는 젬병이었지만 조각칼 톱 그라인더를 구입해 십자가 제작에 매진했다. 길가에 나뒹구는 가로수 가지, 망가진 의자 등 버려진 모든 것을 십자가의 ‘재료’로 썼다.

강 목사는 인터뷰 도중 자신의 왼쪽 허벅지에 생긴 10㎝ 넘는 흉터를 보여주었다. 십자가를 처음 만들기 시작할 무렵 그라인더에 베인 상처라고 했다.

“이렇게 큰 상처를 입은 적도 있어서 아내(54)는 제가 십자가 만드는 걸 좋아하지 않아요. 십자가를 만들다 보면 먼지도 많이 날리니까요(웃음). 하지만 계속 십자가를 만들 겁니다. 십자가는 교회의 우상(偶像)이 아니라 하나님과 하나가 되는 기회를 제공하는 성물(聖物)이기 때문이죠.”

“십자가는 세상 어디든 있다”

강 목사의 제안으로 봉덕교회 성도들도 대부분 십자가를 만들고 있다. 특히 2012년부터 매년 9월 이 교회 2층 식당에서 한 달간 십자가 전시회를 열고 있다. 어른부터 아이까지, 출석 교인 80여명이 만든 십자가를 전시하는 행사다. 첫 전시회 때 출품된 작품은 70여점이었지만 지난해 전시회엔 220점 넘는 십자가가 전시장에 내걸렸다.

그는 “성도들도 나처럼 폐품을 이용해 십자가를 만든다”며 “성도들 집집마다 자신들이 만든 십자가가 걸려 있다”고 자랑했다. 이어 “교인들이 십자가를 통해 예수님의 사랑을 되새기고 있다. 예수님의 사랑을 실감했다는 성도들이 많다”고 전했다.

강 목사의 ‘십자가 사랑’은 십자가 만들기에만 그치지 않는다. 지난해 사진작가 권산씨의 작품 활동을 다룬 국민일보 기사(2014년 8월 4일자 25면 참조)를 접한 뒤 ‘십자가 촬영’도 시작했다.

권씨처럼 그는 자연 속 십자가의 형상을 카메라에 담는다. 지금까지 촬영한 ‘십자가 사진’은 100점이 넘는다.

“‘폐품 십자가’를 만들면서도 느꼈지만 사진을 찍다 보니 세상 어디에나 십자가가 있더군요. 올해 전시회 때는 제가 찍은 십자가 사진들도 전시할 겁니다. 교회에 십자가 상설 전시관이나 박물관을 만드는 게 저의 꿈이에요. 앞으로 10여년 열심히 하다 보면 실현 가능한 목표라고 생각합니다.”

창원=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