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6월 27일(한국시간) 브라질 상파울루의 아레나 데 상파울루 스타디움에서 열린 한국과 벨기에의 브라질월드컵 H조 조별리그 3차전. 0대 1로 패해 조별리그에서 탈락한 한국 축구 대표팀의 홍명보 감독은 “우리 선수들과 나는 최선을 다했다”고 말했다. 그 말을 들은 국민들은 고개를 가로 저었다. 그리고 한국 축구는 국민들의 신뢰를 잃었다.
2015년 1월 31일 열린 한국과 호주의 아시안컵 결승전. 연장 접전 끝에 1대 2로 패한 한국 축구 대표팀의 울리 슈티리케 감독(61·독일)은 어눌한 한국말로 “대한민국 국민 여러분, 우리 선수들 자랑스러워해도 됩니다”고 말했다. 그 말은 들은 국민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한국 축구가 다시 국민들의 신뢰를 얻은 것이다.
한국은 호주 아시안컵에서 55년 만의 아시아 정상 탈환에 실패했다. 비록 우승컵을 거머쥐진 못했지만 그보다 더 소중한 것을 얻었다. 바로 투혼과 위닝 멘털리티(Winning Mentality·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이다.
브라질월드컵에서 태극전사들은 투혼이 실종된 플레이로 팬들에게 실망감을 안겼다. 와신상담한 태극전사들은 아시안컵에서 매 순간 최선을 다했으며 경기 종료 휘슬이 울릴 때가지 포기하지 않고 뛰었다. 준결승전까지 한국의 상대팀들은 끈끈한 ‘한국형 늪축구’에 빠져 고전했다.
한국 축구가 ‘아시아의 호랑이’다운 면모를 되찾은 이면에는 ‘슈틸리케의 마법’이 있다. 슈틸리케 감독은 열정과 헌신 그리고 선수들과의 소통을 통해 한국 축구의 체질을 단기간에 개선시켰다. 이기는 실리 축구를 추구하는 슈틸리케 감독은 다산 정약용에 비유되며 ‘다산 슈틸리케’라는 애칭을 얻기도 했다.
슈틸리케 감독은 호주전이 끝난 뒤 실망하지 않고 “우리가 나아가는 방향은 바른 방향”이라며 “바른 방향으로 계속 가야 한다. 오늘도 우리는 바른 방향으로 갔고, 이번 대회에서 최고의 경기를 보여 줬다”고 희망의 메시지를 전했다.
슈틸리케 감독은 호주 일간지 ‘시드니 모닝 헤럴드’로부터 이번 아시안컵 ‘최고의 감독’으로 선정됐다. 현지 언론이 ‘최고의 감독’으로 호주의 첫 아시안컵 우승을 이끈 엔제 포스테코글루 감독이 아니라 슈틸리케 감독을 선정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김봉길 전 인천 유나이티드 감독은 1일 “슈틸리케 감독은 취임한지 약 5개월밖에 되지 않았지만 돋보이는 카리스마로 선수들을 하나로 단합시키는 데 성공했다”며 “선수들과 소통하고 융화하는 모습에서 한국 축구의 밝은 미래를 볼 수 있었다”고 말했다.
김태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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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5-02-02 02:17 수정 2015-02-02 18: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