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서-남혁상] ‘우문현답’과 국민 눈높이

입력 2015-02-02 02:20

‘우문현답’. 박근혜 대통령이 요즘 부쩍 자주 언급하는 단어다. “우리 문제는 현장에 답이 있다”는 뜻이다. ‘어리석은 질문에 현명하게 답한다’는 뜻의 고사성어 ‘우문현답(愚問賢答)’을 패러디한 말이다.

박 대통령이 최근 이 말을 자주 쓰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박근혜정부가 야심 차게 추진 중인 여러 정책이 국민적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매번 ‘소통 부족’ 지적을 받아온 데 대한 안타까움이 반영됐을 것이다. 책상물림 대신 현장의 목소리가 모든 정책 수립의 선행조건이라는 뜻을 강조한 말이기도 하다. 박 대통령이 “청와대 비서실부터 앞장서서 내가 대학생이고, 구직자고, 기업인이라는 역지사지 자세로 현장을 잘 챙겨 달라”고 강조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런 차원에서 최근 소통을 강화하려는 박 대통령의 행보는 눈에 띈다. 박 대통령은 얼마 전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토론 내용을 공개할 것을 주문했다. 주요정책, 논란이 되는 문제들은 청와대 내부회의 토론 과정을 공개해 국민이 알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었다. 청와대는 이후부터 회의 도중 대통령과 수석 간 수차례 질문과 답변이 오가는 과정을 상세하게 소개하고 있다. 실제로 박 대통령은 여러 회의 때마다 참석자들과 많은 토론을 한다고 한다. 한 청와대 참모는 사석에서 “대통령이 다방면에 많은 관심과 식견을 가지고 핵심을 찌르는 질문을 하고 토론도 즐기시는데, 바깥에선 이런 면이 잘 알려지지 않는다”고 아쉬움을 표시한 적도 있다.

정부는 그동안의 정책 혼선에 대한 자성으로 청와대와 내각, 당청, 당정 간 정책 조율 및 조정기능을 강화한다고 발표했다. 부처 간은 물론 당청·당정 간 소통 극대화 차원이다. 지난해부터 공무원연금 개혁은 물론 사학·군인연금 개혁, 연말정산, 건강보험료 부과체계 개선안 백지화 등 논란이 끊이지 않았던 것에 비춰볼 때 오히려 늦은 감이 있을 정도다. 최근 회의에 앞서 박 대통령이 국무위원, 청와대 수석비서관들과 짧은 티타임을 갖는 것도 소통 강화의 연장선상이다. 취임 초기부터 끊임없이 ‘불통’ 지적을 받아온 박 대통령이 조금이나마 변화를 택한 것은 평가할 만한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 대통령에게는 아직 넘어야 할 많은 산이 있다. 최근 박 대통령과 청와대를 바라보는 여론은 심상치 않다. 박 대통령 지지율은 취임 후 최저치인 29%까지 떨어졌다. 그동안 여러 악재에도 공고했던 지지층 역시 이젠 등을 돌리는 국면이다. 5년 단임제인 대통령 임기 중에서 집권 3년차는 중대한 반환점이자 분수령이다. 집권 3년차에 국정의 성과를 내지 못하면 그 정부는 급격한 내리막길을 걸을 수밖에 없다. 이는 역대 모든 정부의 사례에서도 드러난다.

이런 상황에서 가장 시급한 당면과제는 ‘인적 쇄신’을 통해 박근혜정부의 달라진 면모를 얼마나 보여주느냐다. 곧 이뤄질 개각과 청와대 후속인사는 중요하다. 박 대통령의 대국민 소통 의지를 보여줄 수 있는 리트머스 시험지이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은 자신이 최근 강조했던 ‘심기일전’과 ‘새 출발’의 의미를 되짚어 봐야 한다. 쇄신이 없는 새 출발은 감동이 있을 리 없다. 인적 쇄신이 이뤄진다면 그 시기는 빠를수록 좋다. 그 핵심에는 정치권은 물론 국민적 쇄신 요구를 받아온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의 거취 결정이 자리 잡고 있다.

국정의 성패 여부는 현장의 여론에서 갈린다. 여론과의 소통이 중요한 것은 이 때문이다. 박 대통령이 강조하는 ‘우문현답’의 정답은 바로 국민의 눈높이에서 찾아야 한다.

남혁상 정치부 차장 hs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