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덩이 자국 가죽 시트가 여행용 캐리어로, 폐차시킨 택시 뒷좌석 찾아 소파로 재탄생

입력 2015-02-02 02:34
이광호 작가의 ‘Luggage·Woven Bag’. 엉덩이 자국까지 생긴 자동차 시트가 여행용 캐리어로 다시 태어났다. 이민가면서 차를 팔 수 밖에 없었던 여성의 사연이 담겨있다. 현대차 제공

낯익은 그 광고. 캐나다 이민을 준비하는 노수린(45)씨는 현지 답사비를 마련하기 위해 분신 같은 베라크루즈를 팔았다. 모든 짐을 빼고 마지막에 차 문을 닫았을 때 좌석의 엉덩이 자국이 눈에 들어온다. 광고 속 엉덩이 자국 가죽 시트가 예술작품이 됐다.

현대자동차가 기획한 브릴리언트 메모리전에서 그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엉덩이 자국이 선명한 가죽 시트는 이광호 작가에 의해 여행용 캐리어가 됐다. 신체의 흔적만큼이나 깊게 새겨진 한 개인의 기억과 끊임없이 이동하는 개인의 사유를 동시에 환기시키는 작품이다.

현대차는 차량을 떠나보내는 고객 사연을 공모해 14명을 최종 선정했다. 이들 차량에 대해 예술가 14명이 제작한 작품 24점을 선보인다. 기업이 판매하는 제품 자체를 예술작품의 소재로 썼다는 점에서 아주 직설적인 문화마케팅으로 평가된다.

30여년 손님을 싣고 달렸던 택시 기사 김영귀(66)씨의 그랜저XG. 생계를 위해 하루 16시간 운전해 75만㎞를 뛴 차다. ‘아티스트 칸’은 은퇴한 그가 이제는 편히 쉬라는 뜻에서 폐차장에서 찾아낸 이 차를 소파로 재탄생시켰다. 택시 뒷좌석을 탈착해 트렁크에 올려 실용적인 소파로 만든 것이다. 노란색 번호판, 하늘색 개인택시 표시판이 소파에 장식처럼 달렸다.

경북 상주에서 참외 농사를 짓던 농사꾼 가장의 포터는 김종구 작가의 ‘자동차와 시, 서, 화’에 녹아들어갔다. 아버지가 처음 샀던 그 포터를 기억하게 해 달라는 아들 김중희(31)씨 사연이 채택됐다. 작가는 거대한 광목 위에 아들의 사연을 썼다. 글씨를 쓴 재료는 아버지의 폐차를 갈아 만든 미세한 쇳가루다.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대표작가 출신 이용백은 택배기사의 포터를 분해 시킨 후 기념비 모양으로 재구성한 작품을 내놨다. 가족을 위해 힘들게 살아온 가장인 당신이야말로 이 땅이 기념해야 할 영웅이라는 메시지다.

현대차 아트 디렉터 이대형씨는 “차를 많이 파는 기업이 아니라 고객의 사랑을 받는 기업을 추구한다”고 말했다. 전시는 서울 중구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다음 달 17일까지 이어진다.

손영옥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