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기대가 무너져 내리고 있다. 최근 3주 동안 지지율이 11% 포인트나 떨어지면서 집권 23개월 만에 30%선을 밑돌기 시작한 것이다. 쇄신 인사 미흡, 불통 등 원인은 많겠으나 연말정산 파동이 결정타였다고 본다.
지지율은 흔히 이념·지역·연고·계층 등에 따라 달라지지만 요즘엔 경제 문제가 더 영향을 준다. 예컨대 2007년 이명박 대통령의 당선 배경에는 ‘흠결이 좀 있지만 그럼 어떠냐, 경제만 살려다오’란 유권자들의 지지가 한몫했다. 마찬가지로 박 대통령도 2012년 대선에서 급증하는 복지 수요를 거론하면서 ‘증세 없는 복지 확대’라는 기가 막힌 공약을 내세웠다. 공짜점심은 없다는 속내를 알고 있는 전문가들은 말도 안 된다고 날을 세웠지만, 비판은 유권자들의 환호에 묻히고 말았다.
나 역시 이 코너에서 ‘증세 없이 복지 확대 가능할까’(2013년 1월23일자)란 제목으로 주장을 보탰다. 당선은 이뤘으니 이제 솔직하게 ‘복지 수위를 낮추든 최소한의 증세 가능성을 설득하든’ 보완책이 필요하겠다는 내용이었으나 그건 ‘쇠귀에 경 읽기’일 뿐이었다.
당시 인수위원회는 향후 5년 동안 복지 확대 공약에 필요한 재원 135조원에 대해 세출 구조조정 및 예산절감 등 정부의 비효율성 개선을 통해 60%를, 세수 확대로 40%를 조달하겠다고 밝혔다. 그런데 지난 2년 동안 재원조달 계획은 제대로 작동되지 못했다. 특히 지하경제 양성화를 포함한 세원 확보(계획은 28조5000억원)는 아직까지 감감 무소식이다.
이후 정부가 이런저런 구차한 이유를 앞세워 담뱃세 인상, 연말정산 환급 축소 등을 통한 사실상의 증세 행보에 나선 것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꼴이다. ‘증세 없는 복지 확대’라는 그야말로 한갓 신기루에 대통령도 속았고 우리도 알면서 또는 모르면서 속아 넘어졌다. 나 또한 예산 절감, 세원 확보 등이 제대로 작동된다면 좋겠다는 기대, 뒤집어보면 내 부담이 안 는다는데 한번 지켜보기나 할까 하는 심사가 작용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부끄러운 얘기다.
현실은 그러나 그리 녹록하지 않다. 한국경제의 구조가 1997년 외환위기를 계기로 급변한 탓이다. 그 이전까지만 해도 경제가 성장하면 가계와 기업은 같은 비율로 혜택을 누렸으나 이후로는 경제성장의 과실이 기업에 집중되기 시작했다. 국민총소득(GNI)은 기업·가계·정부의 몫으로 나뉘는데 정부 몫엔 큰 변동이 없지만 기업과 가계의 점유율은 외환위기를 계기로 크게 달라졌다.
98∼2013년 GNI에서 전체 기업이 차지하는 비율은 16.7%→25.7%로 증가한 반면 같은 기간 가계소득은 72.8%→61.2%로 급락했다. 정상적이라면 성장 과실이 몰리는 기업 쪽에 세 부담을 더 지웠어야 함에도 이명박정부는 2008년 법인세를 되레 낮췄고 박근혜정부도 이를 그대로 계승했다. 실제로 2013년 이후 법인세 규모는 2년 연속 감소세다. 2009년 법인세와 소득세 규모는 각각 35조원 전후로 비슷했는데, 지난해(1∼11월) 소득세는 49조원으로 늘어난 반면 법인세는 40조원에 불과했다.
이제 박 대통령이나 우리 모두는 좀 더 솔직해질 필요가 있다. 신기루에 불과했던 ‘증세 없는 복지 확대’에 언제까지 붙잡혀 휘둘리고 있을 수는 없다. 장기적으로 지하경제 양성화도 절실하고 예산 누수도 막아야 하겠으나 이미 돌이킬 수 없는 복지 수요를 감안한다면 당장의 재원조달 문제를 피해갈 수 없기 때문이다.
증세에 대해 정면으로 거론해야 한다. 법인세 인상과 더불어 자본이득세 강화도 적극적으로 추진해야겠다. 진솔한 설득만이 급락한 지지율을 반전시킬 수 있을 터다.
조용래 편집인 jubilee@kmib.co.kr
[조용래 칼럼] 증세 없는 복지확대는 신기루였을 뿐
입력 2015-02-02 02: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