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간을 앞둔 이명박 전 대통령의 회고록 내용이 공개되면서 적지 않은 파장이 일고 있다. 특히 전직 대통령이 현 대통령 취임 두 돌도 되지 않은 상황에서 ‘세종시 수정안’ 등 민감했던 이슈를 끄집어내고 청와대가 즉각 반발하면서 만만치 않은 후폭풍이 한동안 계속될 전망이다.
청와대와 여당 안팎에선 이 전 대통령이 회고록 출간을 계기로 퇴임 2년 만에 다시 현실정치에 발을 들여놓는 것 아니냐는 시각도 나왔다. 이 전 대통령이 개헌, 선거구제 개편 등에 대한 입장 피력을 사실상 예고하면서 이런 분석은 더욱 설득력을 갖는다. 김두우 전 청와대 홍보수석도 30일 “이 전 대통령은 동서 지역감정을 희석시키는 정치적 액션을 하고 싶어했다”고 말했다. 만약 이 전 대통령이 향후 어떤 형태로든 개헌 문제 등을 언급한다면 청와대와의 갈등지수는 더욱 높아질 수밖에 없다. 더욱이 이는 여권 내 친박(친박근혜), 친이(친이명박) 계파 간 반목을 한껏 부추길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이 전 대통령의 회고록 출간 시기와 내용에 대한 타당성 논란도 제기되고 있다. 우선 이 전 대통령 측은 ‘다음 정부를 위해 집필했다’고 밝혔지만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시각이 많다. 성급한 ‘비밀 해제’로 교훈이 되기는커녕 독이 될 수 있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외국 정상과의 비공식 대화나 민감한 남북관계 비사(秘史)까지 상세히 공개됨으로써 현 정부에 부담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회고록에는 퇴임한 지 2년도 채 안 된 이 전 대통령이 외국 정상들과 나눈 민감한 대화가 상당히 자세히 소개돼 있다. 이 전 대통령이 2011년 11월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과 만나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건강에 대해 ‘들은 얘기’를 기록한 대목이 바로 그런 예다.
이 전 대통령은 또 2012년 1월 원자바오 중국 총리와 만찬장에서 나눈 대화를 ‘질문과 답변’ 식으로 상세하게 기술했다. 당시 원자바오 총리는 김정은 북한 노동당 제1비서를 ‘북한의 젊은 지도자’라고 칭하면서 “북한 내부 사정이 좀 복잡한 것 같다”고 말했다고 이 전 대통령은 썼다. 이 자리에서 이 전 대통령이 “(김 제1비서가) 앞으로 50∼60년은 더 집권할 텐데 참으로 걱정”이라고 하자 원자바오 총리가 “역사의 이치가 그렇게 되겠습니까”라는 의미심장한 답변을 내놨다고도 했다.
남북 간 물밑 접촉 과정 역시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다. 회고록에는 우리 측 통일부와 북한 측 통일전선부가 2009년 11월 개성에서 실무 접촉을 했을 때 북한이 정상회담을 여는 조건으로 제시한 3장짜리 ‘합의서’ 내용이 여과 없이 실려 있다. 이에 앞서 김양건 북한 통일전선부장이 임태희 노동부 장관과의 싱가포르 회동에서 “(합의서 없이) 그대로 가면 죽는다”고 말했다는 내용도 있다.
노무현정부에서 청와대 정책실장을 지낸 김병준 국민대 교수는 “노 전 대통령이 이렇게 쓴다고 했으면 막았을 것”이라며 “현재진행형인 사안일 수 있고 해당 국가에 미칠 영향을 고려한다면 세월이 지난 다음에 내는 게 좋지 않았겠느냐”고 말했다.
김경택 기자 ptyx@kmib.co.kr
[靑-MB 정면충돌] ‘교훈’ 얘기하지만… “毒 될 수 있다” 비판 우세
입력 2015-01-31 02: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