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거운 삶의 끝… 치매 노모·장애인 아들 숨진 채 발견

입력 2015-01-31 02:00

장애인 아들(56)은 치매 어머니(75)를 각별히 챙겼다. 15년 전 받은 뇌수술의 후유증으로 뇌병변(5급)과 시각장애(6급)를 앓고 있지만 하루 한 번은 어머니를 모시고 산책을 했다. 몸이 불편한 아들은 마음이 불편한 어머니의 손을 꼭 잡고 한 걸음씩 천천히 내딛으며 동네를 한 바퀴 돌곤 했다. 칼바람이라도 불면 잠시 서서 어머니의 옷깃을 여며주고 다시 걸었다. 이웃 김모(45)씨는 “요새 저런 효자 보기 힘들다”고 했다.

모자(母子)는 어머니의 치매가 심해진 10년 전부터 서울 송파구의 한 빌라 2층 집에서 함께 지냈다. 다리를 절고 한쪽 팔에 마비증세가 있는 아들은 직장을 구할 수 없었다. 오랫동안 폐질환도 앓고 있었다. 생활비는 어머니가 매달 받는 기초연금 약 20만원과 여동생이 보태주는 돈으로 충당했다. 넉넉하지 않은 살림이지만 서로 의지하며 살기엔 크게 부족하지 않아 보였다고 이웃 주민들은 전했다.

아들은 성치 않은 몸으로 어머니를 극진히 보살폈다. 인근에 사는 이모(43)씨는 “할머니가 치매가 있어 집안에서 돌봐주는 건 아들 몫이었다. 식사도 챙겨주고 목욕과 대소변도 도맡아 해결했다. 요새 이런 아들 있느냐”고 했다.

어머니와 외출할 때면 아들은 늘 웃는 얼굴이었다고 한다. 10년 전 이혼한 터라 힘들 법도 한데 그런 내색이 없었다. 몸이 불편해 지팡이를 짚고 걸어야 했지만 어머니 손을 놓은 적이 없다. 어머니는 그런 아들의 머리를 쓰다듬어주곤 했다. 아들은 간혹 이웃과 말을 섞을 때마다 “남은 생을 어머니와 함께 살고 싶다”고 했다.

여동생은 한 달에 한두 번은 꼭 들러 찬거리를 마련해줬다. 집안 구석구석을 청소하며 지내기에 부족한 게 없는지, 건강은 괜찮은지 챙겼다. 매번 노모에게 용돈도 드렸다. 번갈아가며 1주일에 한두 번 전화를 걸어 안부도 물었다고 한다.

지난 25일 외손녀는 평소처럼 전화를 걸었다. 긴 신호음만 들릴 뿐 아무도 받지 않았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며칠 뒤 다시 전화를 걸었는데 이번에도 받지 않았다. 불길한 예감에 경찰에 신고했고 출동한 경찰과 119구급대원들은 싸늘하게 식은 모자의 시신을 발견했다.

서울 송파경찰서는 29일 오후 8시16분쯤 이 빌라 2층 욕실에서 모자가 숨진 채 발견됐다고 30일 밝혔다. 어머니는 옷을 입지 않은 채 욕실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옷을 입고 있는 아들은 어머니와 반대 방향으로 쓰러져 숨진 채였다. 욕실 문은 20㎝쯤 열려 있었다.

유서는 없었고 특별한 외상도 발견되지 않았다. 시신은 부패한 상태였다. 경찰은 사망한 지 1주일쯤 지난 것으로 봤다. 경찰 관계자는 “치매 어머니가 목욕을 하다 넘어지고, 거동이 불편한 아들이 그 어머니를 어떻게든 도우려다 자신도 넘어진 것 같다. 즉사한 게 아니라 온전치 못한 몸 때문에 몸을 일으키지 못해 쓰러진 채 숨졌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경찰은 정확한 사인을 밝히기 위해 부검을 실시키로 했다.

임지훈 기자 zeitgeist@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