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경환 특파원의 차이나 스토리] 마지막 집 지켜주던 소녀마저…

입력 2015-01-31 01:49
프랑스 미술가 줄리앙 말랑과 상하이에서 활동하는 화가 스정이 지난해 크리스마스를 맞아 상하이 철거촌에 그린 벽화 ‘눈물을 흘리는 소녀’(왼쪽 사진). 벽화로 인해 마을이 명소로 변하고 철거가 어려워지자 구청 공무원들은 벽화를 흰 페인트로 덮어 없애버렸다. 신경보 홈페이지

상하이 철거촌 벽화 속 한 여자아이가 마지막 남은 집을 보듬고 있습니다. 얼룩 때문인지 눈물을 흘리고 있는 듯합니다. 옆에서 동네 아이는 벽화 속 소녀의 모습을 따라해 봅니다. 눈물을 흘리던 소녀는 지난 26일 밤 덕지덕지 흰 페인트 속으로 숨어버렸습니다.

중국 상하이시 징안구 캉딩루 600 골목. 주변에는 고층 아파트와 빌딩이 즐비하지만 이곳은 2009년 철거가 시작돼 현재 건축자재와 쓰레기가 즐비한 폐허로 변했습니다. 아직 몇몇 주민들이 남아 버티며 마을의 명맥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황량하기만 한 이곳이 아름다운 미술관으로 변신하는 데는 이틀이면 족했습니다. 프랑스 거리미술가 줄리앙 말랑은 전시 행사차 지난해 말 상하이를 찾았습니다. 상하이에 거리 벽화를 남기겠다고 마음먹은 말랑은 매니저를 통해 수소문을 했고 드디어 상하이에서 활동하는 거리화가 스정(施政)을 만났습니다. 두 사람은 지난해 12월 24일 크리스마스이브부터 이틀에 걸쳐 마을 곳곳에 벽화 10여개를 완성했습니다. 마을의 어린이들도 동참했습니다.

소문이 나자 한 사람 두 사람 마을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인터넷에서도 화제가 됐고, 사진작가들도 즐겨 찾는 명소가 됐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많이 모이자 공무원들이 전전긍긍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루빨리 철거를 완료해야 하는데 마지막까지 버티던 사람들이 힘을 받으면 안 되는데…. 결국 구청 공무원들은 ‘안전’이라는 핑계를 찾아냅니다. 그리고 하나둘 벽화를 없애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26일 밤 마지막으로 ‘눈물 흘리는 소녀’도 지워버립니다.

캉딩루 골목의 벽화 철거는 상하이시 양회(兩會:인민대표대회·정치협상회의)에서도 비판이 제기되는 등 논란이 벌어졌습니다. 지난 25일 상하이시 정협 위원인 다이젠궈 상하이사범대 교수는 폐허 속 벽화가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이유에 대해 “시민들의 심성을 이끌어내고, 따뜻했던 과거 추억과 옛집에 대한 그리움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사람이 많이 몰리니까 안전이 우려된다’는 논리는 ‘일 하나 더하는 것보다는 일 하나를 줄이는 게 낫다(多一事不如少一事)’는 공무원들의 습성일 뿐이라고 비판합니다. 모인 사람들이 안전하게 그림을 볼 수 있도록 자원봉사자들을 보내고 필요하면 안전모를 지급하면 되지 않느냐는 주장입니다. 그게 바로 중국 최고의 국제화 도시인 상하이가 보여줄 수 있는 ‘포용의 정신’이라는 것이죠.

베이징에서 발행되는 일간지 신경보에 지워진 벽화 사진이 지난 28일 소개된 이후 논쟁은 더욱 뜨거워지고 있습니다. 동북일보의 한 평론가는 “시민의 안전 보호는 정부의 책무”라며 “아무리 예술이라 해도 예외가 될 수 없다”고 상하이 공무원을 두둔합니다. 광명망은 “정부는 국민들이 편하고 아름답게 생활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는 구호로 끝나서는 안 된다”는 주장의 평론을 올렸습니다. 이번 일을 계기로 중국 도시관리 행정에 변화가 올지 주목됩니다.

베이징=맹경환 특파원 khmae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