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거슬러 5년 전 밴쿠버올림픽 당시 신문을 펼쳐본다. 이상화, 이승훈, 모태범, 곽윤기, 김연아 등 메달리스트의 얼굴이 거의 매일 1면을 장식하고 있다. 그들은 메달을 딴 후 태극기를 감고 춤을 추는 등 자유분방한 모습을 보였고, 언론 인터뷰에서도 주눅 들지 않고 특유의 끼를 발산했다. 금메달에 대한 강박도 덜했다. 은메달을 딴 한 선수는 시상대 위에서 유행하던 춤을 췄고, “메달을 따지 못해 국민들께 죄송하다”는 익숙한 사과도 하지 않았다. 태극마크를 달았지만 그 무게에 짓눌리지 않았다.
언론은 그들에게 ‘밴쿠버 세대’ ‘88둥이’ ‘V세대’ ‘G세대’ 등으로 이름 붙이고 분석 기사를 쏟아냈다. 이 중 G세대는 디지털 기기를 자유자재로 사용하고 일찌감치 외국어 등 외국 문화를 접해 글로벌 마인드를 가졌다는 뜻으로 명명돼 널리 사용됐다. 서울올림픽이 열린 1988년 전후 태어나 경제적으로 풍요롭고 독재를 경험하지 않아 정치적으로 민주화된 세대라는 분석도 이어졌다. 그 전에 등장한 ‘88만원 세대’ 등 암울한 세대론이 그들에게도 덧씌워지긴 했지만 대체로 기대감이 묻어났다.
5년이 지난 지금 ‘장그래’로 대표되는 고달픈 청춘이 그들과 포개진다. 밴쿠버올림픽 당시 20대 초중반이던 그들이 사회로 진출할 나이가 되면서 현실과 마주 선 것이다. 취업을 위해 필요한 스펙이 3종 세트를 거쳐 5종·7종 세트로 바뀌었다가 다시 9종 세트로 늘었지만 원하는 기업에 안착하는 건 힘들어지고 있다.
연초부터 들려오는 소식도 우울하다. 대한상의 최근 조사에 따르면 500대 기업 중 올해 채용 계획을 확정한 180개 기업의 평균 채용 인원은 전년보다 감소했고 전체 채용 규모도 줄였다. 지난해 서울에 거주하는 청년들(15∼29세)의 실업률이 외환위기 이후 처음으로 10%를 넘겼다는 발표도 있었다. 거침없고 쿨한 이미지의 그들은 온데간데없고 인문대 졸업생의 90%는 논다는 뜻의 ‘인구론’, 청년실업자와 신용불량자를 합친 ‘청년실신’이란 자조 섞인 신조어의 주인공이 돼가고 있다.
윗세대의 어설픈 조언은 그들에게 바로 격퇴 당하고 무시된다. 인터넷 공간에선 자기 비하를 넘어 국가에 대한 실망과 체념의 정서가 넘친다. 윗세대에 대한 불만도 부풀어올라 세대 갈등에 대한 우려도 크다.
혹자는 젊은 세대만 힘든 건 아니라고 한다. 맞는 말이다. 1000만 관객을 돌파한 ‘국제시장’에 등장한 ‘덕수 세대’는 현대사의 모진 풍파를 겪었지만 여전히 힘든 생활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한국의 65세 이상 노인인구 빈곤율은 50%에 육박해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건 새로운 뉴스도 아니다. 그 아래 베이비붐 세대는 내년 정년연장법 시행을 앞두고 다니던 직장에서 희망퇴직이나 명예퇴직 등으로 사실상 해고 수순을 밟는 경우가 늘고 있다. 조기 퇴직한 30, 40대가 자영업 시장에서 적응하지 못하고 퇴출되고 있다는 보도도 있었다. 같은 세대 안에도 다양한 계층이 있는데 나이가 비슷하다는 이유로 한데 묶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는 지적도 옳다.
그럼에도 그 세대에 대한 부채의식이 덜어지진 않을 것 같다. 그들 세대는 어릴 때부터 극심한 경쟁에 시달리고도 기회조차 쉽게 잡지 못하는 세대이기 때문이다. 그들 아버지 세대는 진로를 걱정하긴 했지만 취직 걱정은 하지 않았다. 그보다 아래 세대도 대학 입학과 동시에 스펙을 쌓을 만큼 여유가 없지 않았다.
요즘 들어 그들 세대와 자주 비교되는 일본의 사토리 세대(득도한 것처럼 출세나 욕망에 관심이 없는 세대)도 어떤 면에선 더 나은 측면이 있다. 특히 경제적인 면에선 일본 젊은 세대의 상대적 박탈감이 덜하다. 지난해 말 번역 출간된 ‘절망의 나라의 행복한 젊은이들’을 보면 일본의 20대는 정사원이나 프리터(아르바이트나 파트타임으로 생활을 유지하는 사람)의 급여 격차가 크지 않다. 연공서열을 중시하는 일본사회의 급여 체계로 정사원 연봉이 제한된 측면이 있지만 인건비가 비교적 높기 때문이다. 선술집 등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심야 근무까지 할 경우 30만엔에서 40만엔의 월 수입을 올릴 수 있다고 한다. 엔저가 계속되는 지금 환율로 계산해도 한국 돈 280만원에서 370만원 사이다. 반면 한국은 아르바이트를 해도 최저임금조차 받는 것이 쉽지 않다. 일반 개인 점포든 대기업 계열 가맹점이든 아르바이트라고 하면 쉽게 자르거나 막 대해도 상관없다는 인식이 여전히 강하다.
꼬인 매듭을 풀기 위해선 권한을 더 가진 이 사회의 어른이 먼저 나서야 한다. 현재가 과거의 총합이라고 할 때 현재를 만드는 데 책임이 큰 어른들이 해법을 제시해야 한다. G세대가 조명 받은 지 5년도 안돼 그 이름을 잃어버렸듯 다시 또 5년이 지나 그들이 장그래세대였다는 사실이 잊혀지고 보다 나은 명칭으로 불리길 바란다. 그것이 사회와 언론의 호들갑이더라도 말이다.
김현길 산업부 기자 hgkim@kmib.co.kr
[창-김현길] 장그래가 된 G세대
입력 2015-01-31 02: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