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진구의 영화산책] 약자를 보호하는 기독교의 문화유산

입력 2015-01-31 02:21

“이 세상엔 세 종류의 사람이 있다. 양, 늑대 그리고 목양견(Sheepdog)이다. 악마의 공격에 자신을 보호하지 못하는 이들이 양이다. 약자를 먹이 삼는 악마, 폭력으로 성하는 자, 이들은 늑대다. 그리고 사명감과 진취성으로 무장한 은혜로운 보호자이며, 늑대에 맞서기 위해 사는 이들이 목양견이다.”

이라크 전쟁에 참가한 미국의 명저격수 크리스 카일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 ‘아메리칸 스나이퍼’는 동명의 자서전을 원작으로 미국식 영웅주의가 어떤 것이며, 그 뿌리가 기독교 문화의 영향을 받은 것임을 은연중에 드러낸다.

크리스 카일(브래들리 쿠퍼)은 아버지로부터 사냥을 배우며 명사수로서의 타고난 재질을 인정받고 자란다. 그가 아버지로부터 배운 삶의 철학은 악마로부터 약자를 보호하기 위해 양들을 지키는 목양견이 되어야 한다는 것. 그가 해군 특수부대인 네이비 실 대원으로 활동하며 저격수 역할에 남다른 가치와 의미를 부여할 수 있던 것도 그가 어려서부터 배운 ‘목양견의 철학’ 때문이었다. 카일은 2003년 봄 처음으로 이라크에 파병된 이후 2009년 은퇴할 때까지 공식적으로 160명, 비공식적으로 255명의 반군을 사살한 전무후무한 미국 최고의 저격수였다. 그의 명성은 이라크 반군에게도 익히 알려져 그의 목에는 18만 달러에 이르는 현상금이 걸려 있기도 했다.

‘아메리칸 스나이퍼’가 갖는 가장 큰 의미는 ‘네 이웃을 네 자신같이 사랑하라’(마 22:39)는 그리스도인의 신앙 덕목이 전쟁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적을 죽이는 임무와 어떻게 상충되지 않을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데 있다. 그것은 목양견에 내재해 있는 ‘기사도 정신(Chivalry)’ 때문이다. 흔히 모르는 여성의 편의를 위해 문을 열어주거나 문이 닫히지 않도록 문고리를 잡고 기다릴 줄 아는 남성의 행위를 ‘기사도 정신’이라 부르지만 그 근본적 원리는 약자를 보호하고 지켜주는 기독교 정신으로부터 비롯되었다. 역사가들은 십자군 전쟁에 참가한 기사들이 성지순례객들을 보호하는 임무를 수행한데서 시작되었다고 하지만 스스로를 보호할 힘이 없는 약자를 지켜주고 이를 위해 기꺼이 자신을 희생할 줄 아는 기사도 정신은 성경의 가치관과 일맥상통한다.

이것은 정의로운 전쟁에 나간 군인들에게도 적용된다. 전쟁이란 결국 사람을 죽이는 일인 만큼 모든 전쟁을 반대하거나 총을 든 군인들을 폄훼하는 일은 성경적으로 옳지 않다. 기독교 변증가인 C S 루이스는 그의 명저 ‘순전한 기독교’에서 이렇게 밝힌 바 있다.

“성관계가 전부 간음이 아니듯 사람을 죽이는 것 또한 전부 살인은 아닙니다. 군인들이 세례 요한을 찾아가 자신들이 어떻게 해야 할지 물었을 때, 요한은 군대를 떠나라고 하지 않았습니다(눅 3:14). 그리스도가 백부장을 만나셨을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마 8:5∼13). 선한 대의를 수호하기 위해 무장한 그리스도인으로서 기사(騎士)정신은 위대한 기독교 정신 가운데 하나입니다.”

영화가 시작되면 카일은 건물 옥상에 숨어 저격용 망원경을 통해 한 이라크 여성과 어린 아이를 주목한다.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고 판단했을 때 그는 잠시 망설이기 시작한다. 저들은 연약한 여성과 어린아이 아닌가! 그러나 품안에서 수류탄을 꺼내 아군에게 던지려는 순간 카일은 방아쇠를 당긴다. 그러나 카일은 영화 중간에서 또 다른 어린아이가 동료를 향해 RPG 로켓을 쏘려다 힘에 부치는 바람에 땅에 떨어뜨렸을 때는 방아쇠를 당기지 않았다. 적이라고 무조건 죽이는 것이 기사도 정신이 아님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카일은 주일학교 교사인 어머니 밑에서 신앙을 배우며 성장했다. 비록 영화에서는 성경을 방탄용으로 품에 넣고 다닐 뿐 읽는 모습을 보이고 있지는 않지만, 그는 적을 저격하는 자신의 임무를 수행한 것에 대해 깨끗한 양심으로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이러한 그의 생각은 자신의 동료와 가족을 지키려는 열정으로부터 비롯된 일이다.

미국의 영웅은 여기서 탄생한다. 하나님, 국가 그리고 가정이라는 세 가지 가치를 지키고 실현하는 일이 올바른 삶이며, 이를 위협하는 어떤 악의 도전으로부터도 자신을 희생하며 싸우는 사람이 영웅이 되는 것이다. 본 영화가 끝나면 카일의 죽음을 추모하는 수많은 사람의 모습이 비춰진다. 영웅의 죽음이 전하는 감동은 강한 국가를 만드는 원동력이다.

강진구 (고신대 국제문화선교학과교수,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