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의수 목사의 남자 리뉴얼] 삶의 전환이 필요한 때

입력 2015-01-31 02:34

어린 시절, 겨울이면 연탄불로 호빵을 쪄서 파는 기계가 구멍가게나 문구점 앞에 하나씩 있었다. 그 호빵 하나 손에 들고 ‘호호’ 불면서 따끈한 호빵을 먹을 때면 기분이 참 좋았다. 지금은 간식 축에 들지도 못하는 호빵이 그때는 통학 길에 자주 먹고 싶은 간절한 간식이었다. 국화빵이 그랬고 호떡도 그랬다. 나는 초등학교에서 점심시간에 나눠주던 옥수수죽과 빵을 맛본 마지막 세대이다. 그 시절에는 그것도 은근 맛있었다. 어르신들은 입을 모아 말한다. 가난한 시절에는 모든 게 부족했지만 그래도 살만했다고. 그에 비하면 요즘은 얼마나 풍족한가. 이보다 더 넉넉한 시절이 없는 듯하다. 하지만 아무도 넉넉하고 풍요롭다고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더 힘들다고 깊은 한숨만 내쉰다.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가족들에게 상해를 입히는 일까지 증가하고 있다.

지난해 일어난 송파 세 모녀 자살 사건은 우리 사회 시스템의 사각지대를 보여주었고, 안산 인질극 살인 사건은 깨어진 가족관계의 최후 비극을 실시간으로 온 국민에게 생중계되었다. 서초 세 모녀 살인 사건은 상대적 빈곤을 바라보는 심리적 빈곤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에서 할 말을 잃게 된다. 명문대 경영학과, 외국 유학, 외국계 회사 상무, 강남의 고급 아파트, 본인의 아파트와 부인 명의의 통장 등 빚을 모두 갚아도 최소 10억원의 여윳돈이 있었다. 아버지 강모씨는 실직 상태에서 남몰래 고시원을 전전하면서도 중학생 큰딸을 고급 요가학원에 보냈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실직과 주식투자 실패로 ‘미래에 대한 불안’에 괴로워하다 가족의 동반자살을 결심했다고 한다. 한국사회에서 이른바 ‘성공의 아이콘’으로 불리는 모든 것을 갖춘 강남 중산층이 이런 참극을 저질렀다는 사실에 모두가 경악했다.

이 시대 남성들은 사울과 같은 삶을 살아간다. 왕이 되기 전부터 모든 것을 소유하고 겸손함까지 갖추었던 사울, 그는 자신의 능력 밖인 골리앗을 죽인 다윗을 두려워하다가 모든 것을 잃은 채 불행한 최후를 맞는다. 중년의 불안이 사울의 인생을 짓밟은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인간의 이러한 물질에 대한 불안을 간파하고 계셨다. 그래서 주기도문을 가르치신 후 돈에 대한 교훈을 말씀하셨고, 사람은 자신의 노력으로 사는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돌보심의 은혜로 살아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한 예로 우리가 아침마다 이용하는 출근버스에는 번호와 노선이 명확히 명시되어 있다. 목적지에 가려면 어디에서 갈아탈지 지하철 환승역이 머릿속에 훤하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 명확한 교통편을 이용하는 사람들의 미래는 불확실하다.

요즘 10년 후 20년 후의 내 모습을 상상해본다. 어떻게 노화 과정을 거쳐 가고, 어떻게 생활하게 될 것인지 말이다. 과거를 살펴보며 나의 성장 과정을 이해하고, 현재를 기점으로 나의 미래를 살펴보면서 깨달은 것이 있다. 미래가 그렇게 불안하지 않다는 점이다. 현재 내가 타고 다니는 승용차보다 더 좋은 차를 타고 싶고, 지금 사는 집보다 더 쾌적하고 넓은 집에 살고 싶고, 더 여유로운 일정과 잦은 해외여행을 꿈꾼다면 미래는 더 불안하고 두렵게 느껴질 것이다. 그러나 승용차를 포기하고 더 좋은 집보다 노부부가 생활하기 적합한 시골의 농가를 생각해보고, 찾아오는 사람이 없어 빈둥거릴 정도로 한가한 노후를 생각해보면 그리 불안할 이유가 없었다. 그래서 지금부터라도 천천히 인생의 내리막길도 준비해보기로 했다. 우리의 어린 시절은 대부분 가난했기 때문에 인생의 내리막길을 이미 경험한 세대들이다. 형편이 어려워져서 궁핍한 선택을 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검소한 삶을 연습하는 것이다. 그러려면 지금보다 더 검소해져야 한다. 지금보다 더 소박한 삶을 살려고 노력한다면 그리 불안할 이유가 없다. 오히려 사도 바울이 말하는 자족하는 평안을 누리며 살 수 있을 것이다.

남자들이여, 이제는 더 움켜쥐고 더 많이 소유하기 위해 허겁지겁 달리는 인생을 살지 말자. 솔로몬은 전도서에서 이런 인생을 ‘손으로 바람 잡는’ 헛짓을 하는 사람이라고 지적한다(전 2:17). 현재 내가 가진 것들에 대하여 감사하고, 지난 시간 속에서 누리고 경험했던 것들을 기억하며 더욱 감사하자. 이제부터는 내게 있는 것을 잘 활용하여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삶을 만들어보자. 나를 위해 사는 사람은 인생 자체에 쉼이 없고 곤고하며 감사가 머물 곳이 없다. 그러나 남을 위해 섬기고 나누는 일을 즐거워하는 사람은 작은 것에도 감사하고, 물질과 성공의 노예로 살지 않는다. 하나님을 위해 사는 사람은 모든 것을 주님께 맡기고 기도하고 찬송하며 주신 환경을 감당해 나간다. 불안에 사로잡혀 노예처럼 살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께 맡기고 받은 은혜를 감사하며 기쁨으로 살아갈 것인가? 우리는 선택해야 한다. 그리고 수많은 연습과 노력을 통해 소유 중심의 삶에서 나눔과 감사 중심의 삶으로 인생의 화살표를 전환해야 한다.

이의수 목사 (사랑의교회 사랑패밀리센터·남성사역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