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그룹의 전신은 1952년 세워진 한국화약이다. 이때를 국내 화약산업의 시발점으로 칠 정도로 한화는 이 분야의 선도자다. 그러나 한화는 시장지배적 사업자 지위를 이용해 10년 넘게 담합을 주도했다. 담합 정황이 드러나자 뒤늦게 리니언시(자진신고감경제도)를 했지만 과징금을 면제받지 못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29일 국내 산업용 화약 시장에서 가격과 시장점유율을 담합한 혐의 등으로 한화와 고려노벨화약에 각각 516억9000만원과 126억900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하고 두 법인 모두 검찰에 고발키로 했다.
국내 화약시장의 ‘유이(有二)한’ 사업자인 두 회사는 1999년부터 담합을 시작했다. 독과점 시장인 만큼 경쟁 없이 나눠먹기로 이익을 극대화하기로 한 것이다. 두 회사는 담합을 통해 1999년부터 네 차례에 걸쳐 공장도가격을 똑같이 인상했다. 이들은 가격 담합뿐 아니라 시장점유율을 7(한화)대 3(고려노벨화약)으로 유지키로 합의했고, 이 비율은 10년간 이어졌다.
두 회사는 2002년 세홍화약이 시장에 새롭게 진입하자 세홍화약과 거래한 건설업체에 불이익을 주는 등 온갖 방법을 동원해 영업을 방해했다. 결국 2007년 세홍화약은 망했고, 고려노벨화약은 이 회사를 인수했다.
두 회사의 담합은 내부고발자에 의해 깨졌다. 고려노벨화약 퇴직자가 2012년 공정위에 담합 정황을 제보했다. 공정위는 즉각 조사에 착수했다. 조사 초기 혐의를 부인하던 한화는 조사 중간 공정위에 리니언시를 신청했다.
리니언시는 담합을 스스로 신고한 기업에 혜택을 주는 제도로 1순위로 자수하면 과징금 100% 감면에 검찰 고발이 면제된다.
그러나 공정위는 한화에 리니언시 혜택을 주지 않기로 했다. 이미 제보를 통해 증거가 확보된 후이기 때문에 조사에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이유였다.
한화는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제보자가 1999년 담합 초기의 관련 증거를 제출한 데 비해 한화는 리니언시를 통해 2005년 이후 담합 증거물을 냈다. ‘재판부’ 격인 공정위 전원회의는 담합 시기를 2005∼2012년으로 한정했다. 2003∼2004년 두 회사가 가격 경쟁을 하는 등 일시적으로 담합이 중단됐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결국 공정위가 최종 확정한 두 회사의 담합 시기는 1999∼2002년, 2005∼2012년이다.
하지만 담합 처벌 시효는 담합 종료 시점 이후 5년이기 때문에 1999∼2002년 담합은 처벌하지 못했다. 만약 한화의 리니언시가 없었다면 공정위는 2005년 이후 담합 혐의 입증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공정위가 이를 반영하지 않았다는 게 한화의 불만이다. 지난해 파리바게뜨 등 베이커리 3사는 리니언시를 하고 무혐의를 받았지만 한화는 리니언시를 하고도 516억원의 과징금을 모두 내야 할 처지가 됐다.
세종=이성규 기자 zhibago@kmib.co.kr
뒤늦은 담합 리니언시… 공정위는 거부
입력 2015-01-30 03: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