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을 준 사람이 문제지만 돈을 받은 사람도 문제입니다. 여기저기서 자수를 하면 정말 선처를 해주는지 물으며 극도로 불안해하고 있습니다.”
충남 논산시 노성면 마을이 농협 조합장 선거를 앞두고 터진 돈 봉투 사건으로 발칵 뒤집혔다.
농협 인근의 음식점 주인 이모(58)씨는 29일 “돈 봉투 사건 이후 마을이 초상집 분위기”라고 말했다. 음식점에서 만난 박모(56)씨는 “조합장 자리가 얼마나 대단하다고 그렇게 많은 돈을 뿌려가며 선거를 해야 하는지 기가 막힌 일”이라며 “동네 사람들끼리도 조합장 선거에 대해서는 서로 말을 안 한다”고 흉흉한 분위기를 전했다.
검찰은 최근 조합원이나 가족에게 조합원 가입비(출자금) 명목 등으로 금품을 돌린 혐의로 노성농협 조합장 출마 예정자 김모(55·여)씨를 구속했다. 김씨는 지난해 8월부터 최근까지 조합원 또는 조합원 가족 150여명에게 조합원 가입비(출자금) 명목 등으로 1인당 20만∼1000만원씩 모두 6000여만원을 돌린 혐의를 받고 있다. 이들이 토해 내야 할 과태료만도 최고 50배를 물릴 경우 30억원에 이를 전망이다. 실제로 30억원의 과태료가 부과된다면 이 마을 일대는 초토화될 것으로 우려된다.
전주지검은 조합원 수백명에게 굴비세트를 준 혐의로 농협조합장 출마예정자 이모(59)씨를 구속했다. 이씨는 지난해 8월 25일부터 30일까지 전북 김제의 한 농협조합원 240여명에게 1000여만원 상당의 굴비세트를 택배로 보낸 혐의를 받고 있다.
출마 예상 후보 간 금품을 건네거나 고소·고발도 난무하고 있다. 창원지검 통영지청은 지역 모 축협 조합장에게 현금 수천만원을 건넨 혐의로 전 고성군의원 A씨(58)를 구속했다.
조합장 선거를 치르면서 주민들이 돈이나 향응을 받아 무더기 처벌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경북 봉화군 주민 499명은 2010년 농협조합장 선거를 앞두고 출마예정자로부터 돈을 받은 혐의로 무더기 입건됐다. 이들은 출마를 앞두고 있던 한 후보로부터 한 사람당 적게는 5만원, 많게는 60만원씩 등 모두 7000만원이 넘는 돈을 받았다가 결국 50만∼300만원의 벌금을 내야 했다.
오는 3월 11일 농·축·수협과 산림조합장을 한꺼번에 뽑는 제1회 전국동시조합장선거를 앞두고 전국 곳곳에서 금품 살포 등 불법 행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전국적으로 지난해 8월부터 현재까지 29명이 고발되는 등 선관위에 접수된 조합장 부정선거 적발 사례는 167건에 달한다.
선관위는 이날 전국 244개 선관위에서 공정선거지원단 1800여명이 일제히 발대식을 갖고 본격적인 단속활동에 나선다. 신고포상금을 종전 최고 1000만원에서 10배인 1억원으로 올렸다. 신고자 신원은 철저히 보호하고 돈을 받는 사람이 자수하면 과태료를 면제하는 등 신고, 제보가 활성화될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지나친 선거운동 제약으로 ‘깜깜이 선거’가 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 때문에 조합장 선거는 조합원을 상대로 더욱 은밀하고 치밀한 수법의 불법 선거가 기승을 부릴 것으로 우려된다.
조합장 선거는 정식 후보자 공개가 투표일 13일 전에야 이뤄지는 데다 후보자 본인 이외에는 누구도 선거운동을 할 수 없다. 선거사무소, 사무원, 선거운동원을 둘 수 없고 현수막도 설치할 수 없다. 토론회나 연설회도 없어 유권자가 후보자에 대한 정보를 얻을 기회가 극히 제한적이다.
조합장 입후보자들이 부정선거를 통해서라도 조합장 자리에 오르려는 이유는 적잖은 권력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임기 4년 조합장의 연봉은 많게는 1억원을 훌쩍 넘기도 한다. 지역 단위 조합별로 영업이익이 서로 달라 조합장의 연봉은 천차만별이다. 대다수 조합장은 각종 경조사비 지출이나 업무추진비도 재량껏 사용이 가능하다. 시골이라도 조합장 연봉이 최소 5000만원을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조합장들은 고액 연봉 외에 지역 유지로 조합 운영의 실질적인 책임을 지면서 크고 작은 사업에 선정권을 쥐고 있다. 차량과 운전기사 등 인적·물적 지원도 만만찮다. 조합장 자리를 지방의원이나 자치단체장 출마를 위한 디딤돌로 삼는 경우도 많다.
청주·논산=홍성헌 정재학 기자, 전국종합
뿌린 돈 6000만원, 과태료 30억… 한 마을이 난리 났다
입력 2015-01-30 03:18 수정 2015-01-30 16: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