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심 못 읽고… 건보개혁 또 우왕좌왕

입력 2015-01-30 02:40
건강보험료 부과체계 개편을 무기 연기한 정부 결정이 심각한 민심 이반을 불러오고 있다. ‘결국 부자를 위한 정권 아니냐’는 인식이 급속하게 퍼지고 있다. 정부가 민심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고 중요한 선택 국면에서 잇따라 헛발질을 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보건복지부가 ‘건보료 부과체계 개편 기획단’을 중심으로 준비한 개혁안의 핵심은 ‘고소득자는 더 내고 저소득층은 덜 낸다’는 것이었다. 취지를 충실히 설명했다면 연말정산으로 상처받은 민심을 달랠 수 있는 ‘괜찮은’ 정치적 소재였다. 연말정산에 대한 불만은 단순히 ‘내가 더 내는 게 싫다’보다 ‘고소득 자영업자는 철저히 징수하지 않으면서 왜 월급쟁이 중산층에게만 더 걷어가느냐’가 본질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부는 엉뚱한 수를 뒀다. 건보료 부과체계 개편으로 혜택을 입을 저소득층 600만 가구보다 고소득자 45만여명에게 유리한 결정을 내렸다. 이는 연말정산 형평성 문제와 담뱃값 인상, 주민세·자동차세 인상 추진 등으로 속이 상할 대로 상한 민심에 불을 지르는 결과를 가져왔다. 정부는 앞서 연말정산 논란 때도 처음에는 보완책 소급 적용이 불가하다고 했다가 다시 소급해주겠다고 하는 등 허둥지둥했다.

야당은 29일 강도 높게 정부를 비난했다. 새정치민주연합 소속 국회 보건복지위원들은 성명을 내고 “(정부가) 앞으로도 부자 감세는 유지하고 서민 증세는 계속하겠다는 선언”이라며 “박근혜정부의 부자 감싸기 본색이 다시 한번 드러났다”고 꼬집었다.

우윤근 원내대표도 “개편 포기 이유를 솔직하게 설명한 뒤 이해를 구하는 것이 대통령의 국민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라고 주장했다.

복지 시민단체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는 “원래의 약속대로 소득 중심 건강보험료 부과체계 개편을 추진하라”고 촉구했다. 건강보험공단노동조합은 “모든 방법과 수단을 동원해 ‘부자를 위한 건강보험’이 아닌 ‘대다수 국민을 위한 건강보험’이 되도록 투쟁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여론이 심상치 않자 청와대는 “백지화된 것은 아니며 충분한 시간을 두고 검토해 추진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은 ‘청와대 압력이 작용했다’는 취지의 보도에 대해 “사회적 공감대를 확보하기 위해 좀 더 깊은 논의가 필요하다고 전적으로 복지부 장관이 판단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직접 진화에 나선 모습이지만 돌아선 민심으로부터 다시 신뢰를 얻으려면 시간이 한참 걸릴 것으로 보인다.

권기석 최승욱 기자 key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