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기자-최현수] 한심해도 너무 한심한 軍 ‘性군기 대책’

입력 2015-01-30 02:30

‘남자군인과 여자군인이 부득이 신체접촉을 할 때는 한 손 악수만 해야 한다. 지휘관계에 있는 이성 상하 간에는 교제할 수 없고. 남자군인과 여군이 단둘이서 차량으로 이동해서는 안 된다.’

지난 27일 부하 여군을 관사에서 수차례 성폭행한 혐의로 현역 대령이 긴급 체포된 뒤 육군은 긴급 화상지휘관회의를 가졌다. 김요환 육군참모총장이 직접 주재한 회의에서 나온 대책이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성군기 개선을 위한 행동수칙’ 개정이었다. 단지 행동수칙을 개정하면 성범죄가 근절된다고 보고 있는 건가. 이미 이와 유사한 내용의 행동수칙은 명문화돼 있다. 하지만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사문화된 규정이 된 지 오래다. 그런데도 기껏 행동수칙을 개정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육군사관학교를 나온 엘리트 지휘관이 딸 같은 나이의 부하 여군을 성폭행하고 상관의 성추행을 견디다 못해 여군 대위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발생했지만 국방부는 여전히 성범죄의 원인을 개인적인 일탈행위로 여기고 있는 셈이다.

군내 성범죄는 지위와 계급을 남용한 성적 착취라는 점에서 죄질이 나쁘다. 이번 사건처럼 계급도 낮고 나이도 어린 부사관이 대령의 명령에 저항하는 것이 가능하겠는가. 더구나 장기복무 심사를 앞두고 있는 처지라면 근무평정과 추천권으로 ‘밥줄’을 쥐고 있는 지휘관의 심기를 거스르는 일은 더더욱 쉽지 않다.

게다가 처벌마저 솜방망이다. 성범죄가 발생하면 군은 앵무새처럼 ‘일벌백계하겠다’ ‘원아웃제를 적용하겠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최근 5년간 발생한 여군 대상 성범죄는 83건에 달하지만 실형은 단 3건이다. 부하 여군을 자살하게 만든 모 소령에게는 집행유예가 선고됐다. 가혹행위는 인정되지만 추행 정도가 약하고 전과가 없다는 이유다. 한 사람의 목숨을 앗아간 행위에 대해 지나칠 정도로 관대한 처벌이다.

여군은 이제 1만명을 넘어선다. 이들이 성범죄로부터 안전한 근무 여건을 갖지 못한다면 ‘대한민국을 지키는 강한 군대’라는 육군의 모토는 ‘헛소리’에 불과하다. i

최현수 정치부 기자 hsch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