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기술금융 줄세우기는 ‘창조금융’ 아닌 ‘코드금융’

입력 2015-01-30 02:40
기술금융(기술신용대출) 실적으로 은행들 줄 세우기에 나선 금융 당국의 행태는 도가 지나치다. 기술금융이란 기술력은 있으나 담보나 현금 창출 능력이 부족한 중소·벤처기업에 기술신용평가기관(TCB)의 평가서를 바탕으로 신용대출을 해주는 것을 말한다. 창조경제를 강조한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해 7월 금융권 보신주의를 질책한 이후 금융위원회가 강력한 드라이브를 건 정책이다. 취지와 방향은 맞다. 기술력을 지닌 중소·벤처기업을 육성하려면 담보·보증 중심의 보신주의 대출 관행은 깨뜨려야 한다. 하지만 기술금융 심사분석 역량도 갖춰지지 않은 상황에서 실적 경쟁으로 몰아가는 건 자칫 금융권 대출 부실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대단히 우려스럽다.

금융위원회가 28일 제1차 금융혁신위원회 회의를 열고 지난해 하반기 은행 혁신성 평가라는 이름으로 은행 순위를 발표한 데 대해 거센 비판이 일고 있다. 금융위는 평가지표로 기술금융(40점), 보수적 금융관행 개선(50점), 사회적 책임 이행(10점)을 내세웠다. 하지만 정부가 정책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무리수를 두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평가 배점에서 기술금융 실적이 거의 절반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기술금융은 은행이 손실 위험을 무릅쓰면서 중소·벤처기업에 지원을 해주는 것이다. 이 때문에 잘못하면 제2, 제3의 모뉴엘 사태를 초래할 수 있다. 은행별 영업 특징을 무시하고 과도하게 실적을 강요하는 건 경영 자율성을 침해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당국이 이 결과를 임직원 평가에 연동시켜 성과급에 반영하겠다고 한다. 이런 식으로 밀어붙이니 은행들이 실적을 부풀리고 있는 게 아닌가. 지난해 7월 도입된 기술금융 실적은 연말 9조원에 육박했다. 정부 목표치보다 2배 정도 많다. 하지만 눈 가리고 아웅 식이었다. 기존 거래 기업의 일반 대출을 기술신용대출로 둔갑시키거나 자영업자 대출을 기술금융 실적으로 끼워넣은 것이다. 정작 중소기업 대출은 거의 늘지 않았다니 한심스럽다.

전형적인 전시행정이다. 이건 ‘창조금융’이 아니라 ‘코드금융’이다. 금융 당국자들이 청와대에 잘 보이기 위해 신종 관치에 나선 것과 다름없다. 녹색성장을 발전 전략으로 내세운 이명박정부 시절의 ‘녹색금융’이 지금 흐지부지된 데서 볼 수 있듯 ‘기술금융’도 정권이 바뀌면 똑같은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높은 것은 이 때문이다. 기술금융 제도의 취지를 제대로 살리려면 당국자들의 인식부터 바뀌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