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불황이 낳은 두 풍경] 박봉 직장인 ‘남몰래 투잡’

입력 2015-01-30 02:16

재벌그룹 계열사에 다니는 최모(27)씨는 주말이면 딴사람이 된다. 평일에는 평범한 직장인이지만 주말에는 ‘펫시터’(반려동물 돌보미)로 변신한다. 종종 주말에도 출근해 추가 수당을 받았지만 회사는 최근 ‘경영난이 심각하니 주말 근무를 자제하라’는 권고를 내렸다. 월세 내기에 빠듯한 최씨는 부족한 월급을 보완해줄 아르바이트를 생각해 냈다.

동물을 혼자 두고 집을 비우는 사람들이 최씨의 고객이다. 빈집에 찾아가 먹이를 주고 한 시간 동안 놀아주면 2만∼3만원을 받는다.

경기 불황이 오랫동안 이어지면서 월급만으로는 생활을 유지하기 어려운 직장인들이 새로운 아르바이트에 뛰어들고 있다. 회사에 소속된 월급쟁이들이 겸직금지 규정을 피해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다보니 차별화 방법도 갈수록 기발해지고 있다.

건축설계사무소에 다니는 김모(26·여)씨는 전공을 살려 부업으로 카드 디자인을 한다. 인쇄전문 업체 틈에서 살아남기 위해 직접 만든 카드에 손글씨를 넣고 발송까지 해준다. 한 달에 10만∼20만원 남짓 버는데, 이 돈은 전부 ‘여행통장’에 쌓고 있다. 월급만으로 해외여행은 꿈도 못 꾸기 때문이다. 김씨는 “크리스마스나 명절 시즌에는 벌이가 짭짤하지만 언제 회사의 감시망에 걸릴지 몰라 늘 불안하다”고 29일 말했다.

아침에 전화를 걸어 깨워주는 ‘모닝콜 알바’는 고객 알선을 전문으로 하는 온라인 카페까지 등장했다. 이 카페의 회원수는 3800명을 넘어섰다. 수요에 비해 공급이 늘자 ‘노래 불러주기’ ‘재미있는 이야기로 깨워주기’ ‘연예인 성대모사’ 등으로 서비스가 진화하고 있다. 다이어트를 원하는 고객에게 매일 아침 자극적인 말로 식욕을 떨어뜨려주는 모닝콜 알바까지 나올 정도다.

군인 남자친구를 둔 여성들의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남자친구를 위한 앨범 디자인이나 동영상 제작 아르바이트가 인기다. 주로 디자인이나 영상 관련업체에 다니는 직장인들이 눈독을 들인다. 디자인 분야는 3D(더럽고, 어렵고, 위험한) 업종으로 불릴 만큼 업무량 대비 박봉을 받는 경우가 많아서다. 투잡족은 계속 늘어날 전망이다. 지난해 온라인 취업알선 사이트 사람인이 직장인 5498명을 대상으로 설문했더니 응답자의 10.7%는 ‘투잡을 하고 있다’고 답했다. 91.6%는 ‘투잡을 할 생각이 있다’고 했다.

정부경 기자 vick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