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어이없는 일이 벌어졌다. 박근혜정부가 출범 이래 공들였던 건강보험료 부과 방식 개선안이 발표 하루 전날 백지화된 것이다.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은 28일 “올해 안에는 건보료 부과체계 개선안을 만들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 이유를 “추가 소득이 있는 직장가입자나 피부양자의 부담이 늘어나면 솔직히 불만이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2013년 7월 각계 전문가들로 구성된 ‘건보료 부과체계 개선기획단’의 최종 보고서 공개를 하루 앞둔 시점에서 나온 문 장관의 발언은 국민을 어리둥절하게 한다. 정부가 스스로 구성한 개선기획단이 1년6개월 만에 최종 결과물을 내놓으려는 때에 정부가 나서서 이를 차단해 버린 것이다. 문 장관은 전날 “임기 중에 꼭 추진하고 싶은 게 부과체계 개선”이라고 말한 터라 더욱 충격을 주고 있다.
현행 건보료 부과체계는 김종대 전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이 지난해 말 퇴임하면서 언급했듯 공평성과 합리성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 김 전 이사장은 집을 포함해 5억원이 넘는 재산과 연금소득이 있지만 직장가입자인 아내의 피부양자가 돼 건보료를 한 푼도 안 낸 반면 1년 전 밀린 공과금을 남기고 자살한 ‘송파 세 모녀’는 매달 5만140원을 건보료로 냈었다. 기획단은 이처럼 모순 덩어리인 부과체계를 바로잡는 데 초점을 맞췄다. 가장 유력하게 거론된 방안은 그동안 월급에서만 건보료를 내던 직장인 중 종합소득이 연간 2000만원 이상(현행 7200만원)인 경우는 별도의 건보료를 물리는 것이었다. 26만3000명이 대상자다. 또 그동안 건보료를 내지 않았던 직장인의 피부양자 중 연금소득 등이 2000만원을 넘을 경우 지역가입자로 편입시켜 건보료를 내도록 했다. 19만3000명이 해당된다. 지역가입자들은 성·연령·자동차에 물리던 건보료를 폐지하고 소득과 재산에 매기기로 했다. 이렇게 되면 전체 지역가입자의 79.3%(602만 가구)의 보험료가 내려가게 된다.
연말정산 파동, 주민세 인상 추진 논란 등으로 코너에 몰린 정부가 지지층인 고소득 직장인과 고소득 피부양자를 잡기 위해 개선안을 백지화시킨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일부 고소득층을 보호하기 위해 서민과 중산층 부담을 덜어주는 정책을 일거에 내팽개쳤다는 얘기다. 현행대로 유지될 경우 건보료 재정 적자는 2050년 100조원을 돌파해 2060년이면 132조원까지 눈덩이처럼 불어날 것으로 분석됐다. 앞으로 서민과 중산층의 희생이 상상을 초월한다는 전망이다.
청와대는 29일 “백지화된 것은 아니다”며 진화에 나섰지만 이를 믿는 국민은 그리 많지 않다. 올해 개편안을 내놓지 않으면 내년 총선, 2017년 대선이 실시되는 것을 고려할 때 개편안 논의는 사실상 물 건너간 것이나 다름없다. 건보료 개선은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자 140대 국정과제의 하나다. 이런 점에서 지금이라도 무기연기 방침을 철회해야 하고 개편안대로 이행돼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국민은 등을 돌리고, 지지율 하락만 있을 뿐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사설]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 구분 못하는 정부
입력 2015-01-30 04: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