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 일본 미야자키현 피닉스CC에서 열린 던롭 피닉스 토너먼트에서 만난 프로골퍼 허인회(28)는 군 얘기만 나오면 애써 외면했다. 12월 8일 입대를 앞두고 있었지만 “갈 때 가더라도 군 문제로 스트레스받기 싫다”는 게 이유였다. 입대 전날 스폰서가 주최한 연말 행사에서 그를 다시 만났다. 트레이드마크였던 노랗고 긴 머리카락을 자른 채 나타난 그는 마지못해 입대한다는 표정이 역력했다. 지난해 일본투어 최저타 신기록을 세운 잘나가는 프로골퍼인 데다 자동차 사업까지 손댔던 그에게 군대는 ‘청춘과 경력의 단절’을 의미했다.
그로부터 50일 만인 28일 경북 문경의 국군체육부대에서 만난 그는 “허인회가 맞나” 할 정도로 전혀 딴사람이 돼 있었다. 6주간의 훈련이 끝난 뒤 체육부대에 갓 배치된 그는 군기가 바짝 들어 있었고, 전례 없이 ‘감사와 애국심’을 자주 언급했다.
“저만큼 자유로운 영혼도 없었을 겁니다. 해외투어를 다니면서 제 자신만 알고, 정체성도 모호했던 적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군사훈련을 받으면서 얼마나 많은 사람의 도움과 희생으로 제가 편하게 선수생활을 했는지 깨닫게 됐습니다.”
그는 훈련을 마친 뒤 아버지와 통화하면서 처음으로 “고맙다”는 말을 하며 눈물을 흘렸다고 했다. “훈련소에서도 삶이 고달픈 어린 청춘들이 그렇게 많은 것을 처음 알았다”면서 늘 불평만 했던 자신이 부끄러웠다고 말했다.
그는 올해 10월 경북 문경에서 개최되는 제6회 세계군인체육대회에서 한국에 골프 종목 금메달을 안길 재목이다. 국군체육부대에 골프팀이 없었지만 올해 한시적으로 팀이 구성돼 입대하게 된 운이 좋은 케이스다.
“이번 군인체육대회 목표는 무조건 개인전·단체전 2관왕입니다. 프로골퍼 생활을 시작한 뒤 지금처럼 체력훈련을 열심히 한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병역 문제로 병무청과 실랑이를 벌이고 있는 배상문(29)에게도 “잠시 뒤처지는 것 같지만 길게 보면 군대가 선수생활에 큰 도움을 줄 것”이라고 입대를 권유했다.
그의 별명은 ‘게으른 천재’였다. 그는 경기 당일 샤워를 하고 1시간 전쯤 도착해 클럽을 몇 번 휘둘러보고는 경기에 임한다. 대회 전 공식 연습 라운딩도 거르기 일쑤였다. “잘 모르는 코스에서 경기하면 집중이 더 잘된다”는 궤변까지 서슴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에 군사훈련을 받으면서 처음으로 제대로 된 체력훈련을 한 셈이다. 그는 “훌륭한 군인으로 그동안 부모님과 우리 사회에 진 빚을 갚겠다”면서 “남자라면 반드시 군대를 갔다 와야 한다”며 목청을 높였다.
문경=서완석 국장기자 wssuh@kmib.co.kr
군 입대한 게으른 천재 프로골퍼 허인회 “남자라면 반드시 군대 갔다 와야 해”
입력 2015-01-30 03: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