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정진영] 건강보험의 역사

입력 2015-01-30 02:10

의료보험은 정치의 산물이다. 철혈(鐵血)재상으로 불리던 독일의 비스마르크는 1881년 황제 빌헤름 1세 명의의 칙서를 의회에 보냈다. 내용은 노동자들을 위한 복지정책을 적극 추진해야 된다는 것이었다. 프랑스 대혁명 직후였던 당시 유럽은 급진적 사회주의 세력이 크게 늘어났다. 불안한 국내 사정에 위협을 느낀 비스마르크는 노동자들을 달랠 수단이 필요했고, 결국 1883년 건강보험법을 통과시켜 세계 최초의 의료보험을 도입했다. 독일 사회민주당 창립자인 베벨과 유물론의 시조 엥겔스까지 의회에서 반대표를 던질 정도로 당시로서는 급진적인 조처였다.

이어 의료보험은 오스트리아와 영국, 일본 등으로 확산됐고 1930년대 세계 공황 후에는 캐나다, 라틴아메리카 등에도 정착됐다. 1929년 사회보장법을 제정한 미국은 그동안 사보험 위주의 정책을 펴왔으나 지난해 1월부터 전 국민 건강보험 가입을 골자로 하는 오바마 케어가 시행되고 있다.

우리나라 의료보험의 시작은 63년 12월 의료보험법이 제정되면서부터다. 그러나 실제 의료보험이 처음 적용된 것은 500인 이상 사업장 486곳의 근로자들을 대상으로 한 77년 7월이었다. 이후 공무원 및 사립학교 교직원, 300명 이상 사업장 근로자 등으로 확대됐다. 지역의료보험 시범사업 등을 거쳐 마침내 89년 7월 전 국민 의료보험이 실현됐다. 99년 2월 국민건강보험법이 제정되면서 명칭이 의료보험에서 건강보험으로 바뀌었다.

우리 건강보험제도는 오바마 미국 대통령도 칭찬할 만큼 비교적 성공적으로 운영됐다고 평가받는다. 그러나 건강보험료 부과체계의 불형평성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아 개선안을 마련했으나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이 발표 하루 전날 돌연 백지화해 뒷말이 많다. 청와대 외압설 등 이런저런 설이 끊이지 않고 있다. 정치의 산물이었던 의료보험의 역사가 대한민국에서 되풀이되는 형국이다. 과즉물탄개(過則勿憚改·잘못된 점을 알게 되면 고치기를 주저하지 마라)는 공자 말씀이 절실하다.

정진영 논설위원 jy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