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6일 오전 9시 서울 강동구 아리수로 주사랑어린이집 앞. 귀여운 여자 어린이 3명이 엄마에게 배꼽 인사를 하고 보육교사의 안내를 받아 교실 안으로 들어갔다. 맞벌이 부부의 아이들은 오전 8시 20분부터 등원한다. 1∼4세 아이들 18명이 모두 모이는 시간은 오전 10시. 먼저 온 아이들은 장난감을 가지고 놀면서 친구들을 기다렸다.
여자 아이 3명이 ‘전화놀이’를 하고 있었다. 장난감 전화기를 건네는 한 아이를 보며 “여보세요”라고 말했다. 아이는 또박또박 “엄마 일하고 있어?” “아빠는 회사 갔어”라고 묻기도 하고 답하기도 했다. 평소 엄마와 이런 대화를 자주하는 듯했다.
언젠가부터 ‘어린이집’을 포털에서 검색하면 폭행, 학대, CCTV 설치 같은 ‘어린이’와는 절대 어울리지 않는 말들이 연관 검색어로 뜬다. 씁쓸한 대한민국의 자화상이 아닐 수 없다. 최근 불거진 인천 어린이집 보육교사의 폭행사건으로 사회가 큰 충격에 빠진 가운데 정부는 보육교사 국가시험제도를 도입하고, 어린이집 평가인증제를 의무평가제로 전환하며 CCTV 설치 의무화를 추진하는 등 ‘어린이집 아동학대 근절대책’을 발표했다.
하지만 여론은 냉담하다.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이 역시 ‘땜질’용으로 끝날 것이 불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근본적인 문제는 어떻게 풀어야 할까. 이날 기자는 주사랑어린이집 ‘일일 보육교사’를 경험하며 해법을 고민해봤다.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가 먼저
오전 11시. 아이들과 교사들이 모두 한자리에 둘러앉아 율동하며 ‘감사해요’ 찬양을 불렀다.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하지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아이들은 누가복음 2장 10∼11절의 말씀에 이어 시편 106편 1절, 빌립보서 4장 4절도 ‘거뜬히’ 암송했다. 특별히 암송을 잘하는 아이들에게는 예쁜 캐릭터의 밴드를 선물로 주었다. 한 교사가 간단하게 말씀을 인도하고 기도를 드린 뒤 예배는 마무리됐다. 매일 드리는 예배 시간 15분. 주사랑어린이집이 존재하는 이유다.
이곳에서 예배를 꼭 드리는 건 직접적으로 아이들의 변화를 경험했기 때문이다. 김미애(37·분당우리교회) 원장이 이전 보육교사 시절에 맡은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로 의심되던 한 아이가 1년 동안 성실히 예배를 드린 결과 지혜로운 아이로 성장했다. 그 아이 엄마의 적극적인 추천으로 4년 전 주사랑어린이집을 개원했다.
아이만 변하는 게 아니다. 예배를 통해 교사들도 은혜를 받았다. 매일 잠잠히 묵상하고 기도하는 시간을 가지니 교사들부터 주님 안에서 영적으로 치유받았다. 아이들에게 주는 사랑을 주님으로부터 먼저 공급받았다. 보육교사 권소라(29·오륜교회)씨는 “어릴 때부터 교회에 다녔지만 이곳의 예배를 통해 신앙이 성장했고 마음의 평안함을 느끼고 있다”며 “교사로서 아이들에게도 복음을 전해야겠다는 사명감이 생겼다”고 말했다.
김 원장은 “최근 어린이집 분위기가 안 좋다. 보육교사의 폭행사건 이후 부모들로부터 연락을 받거나 특별히 요청을 받은 것은 아니지만 동종업계 종사자들의 전체적인 긍지를 떨어뜨리고 스스로 위축들 게 한 사건임에 분명하다”고 씁쓸해했다. 그는 “보육 일은 자기 적성에 맞으면 천국이지만 그게 아니면 너무 힘들다”며 “교사가 행복해야 아이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덧붙였다.
사랑으로 기다리는 ‘엄마의 마음’
대여섯 명의 아이들이 교사와 함께 부엌놀이를 하고 있었다. 장난감으로 설거지를 하고 커피도 끓였다. 한 여자아이가 장난감 커피잔을 기자에게 건넸다. 맛있다고 반응해주니 또다시 커피를 마시라고 했다. 그렇게 계속 건네기를 20번. 이쯤 되면 슬슬 싫은 소리가 넘어오기 마련이다. 아이가 또 커피잔을 들기에 손 사양을 하며 “그만”이라고 말하려는 순간 옆에 있던 권 교사가 상냥하게 말을 건넸다. “은아야, 오늘은 선생님하고 카페라테를 만들어볼까?”
끝까지 아이의 몸짓과 말들을 교사는 지켜보고 있었다. 똑같은 행동을 반복하는 아이들을 한결같이 받아주는 권 교사가 은아에게 내민 손은 따뜻했다. 그는 “교사는 아이들을 기다려주고 믿어줘야 한다”며 “최근 보육교사 자격관리 강화에 대한 논란이 많지만 아무리 학벌이 높다 하더라도 보육교사의 기본적인 자질인 사랑이 없으면 소용없다”고 했다. 또 “사명감으로 묵묵히 일하는 교사가 더 많다는 걸 알아주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어린이집에서 식사시간은 그야말로 ‘전쟁’이었다. 이날 주사랑어린이집 교사들은 아이들을 돌보느라 맘 편히 식사를 하지 못했다. 교사가 아이들을 따라다니며 일일이 밥숟가락으로 떠먹이기까지 했다. 밥과 국물, 반찬을 흘리는 건 다반사. 권 교사는 어느 정도 아이들이 식사를 마쳤을 무렵, 5분 만에 ‘뚝딱’ 해치웠다. 식사 후 나른한 오후 아이들은 낮잠을 잤다. 점심을 먹고 잠자는 아이들 곁에서 권 교사는 말씀을 묵상했다. 한시도 반 아이들 곁을 떠나지 않았다.
사실 어린이집 교사들은 과도한 업무에 시달린다. 휴식시간 없이 하루 평균 10시간 정도 일한다고 한다. 그렇다고 급여가 높은 것도 아니다. 25일 청주시에 따르면 지난해 8월 한 달간 청주시내 811개 어린이집을 대상으로 방문 설문 전수조사를 벌인 결과 교사들의 본봉 수준은 박봉이었다. 직장(154만3000원) 국공립(149만3000원) 사회복지법인(142만3000원) 교사들은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 가정 어린이집 교사들의 기본급은 110만3000원에 불과했다. 민간어린이집 교사들은 117만6000원이었다. 이곳 주사랑어린이집 교사들도 별반 다르지 않다고 했다.
김 원장은 다른 근무 조건으로 교사들의 편의를 봐줬다. 5명의 교사는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휴식 시간을 포함해 하루 9시간 근무를 원칙으로 하며 탄력적인 출퇴근을 한다는 것이다.
김 원장은 “CCTV로 인해 최악의 교사를 막을 수 있다면 찬성한다”면서도 “CCTV를 설치하면 학부모들이 과도하게 자기 아이 위주로 보게 될 것이고, 가뜩이나 열악한 교사들의 근로 환경은 더욱 힘들어진다. 여러 가지로 학부모와 소통을 많이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 모든 게 갖춰져도 사랑이 없으면 안 된다. 김 원장은 “교사들이 주님께 매일 나아가고 아이들의 마음을 잘 받아주며 사랑으로 대한다면 아이들은 분명 행복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아영 기자 cello08@kmib.co.kr
[미션 르포] “우리는요, CCTV 없어요”… 기자, 일일 보육교사로 어린이집 체험 해보니
입력 2015-01-31 02:30 수정 2015-01-31 18: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