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훈 밴쿠버기독교세계관대학원(VIEW) 원장은 2년 전 ‘유리 가가린에 전하는 사과’라는 제목으로 한 편의 칼럼을 썼다. 구 소련 전투기 조종사이자 우주인 가가린(1934∼1968)은 “(우주에서) 하나님은 보이지 않았다”고 말한 적 없으니 잘못된 사실을 설교에서 언급하지 말아 달라는 게 논지였다.
칼럼에 따르면 가가린은 러시아정교회 교인이자 세례 받은 신자였다. 이는 그의 친구이며 가가린공군사관학교 교수였던 페트로프 대령이 2006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밝혔다. 페트로프는 “가가린은 언제라도, 그리고 어느 곳에 있든지 항상 하나님을 고백했다”고 증언했다. 또 가가린이 했다는 하나님 부재 발언은 그가 아니라 당시 소련공산당 중앙위원회 전체회의에서 흐루쇼프 총리가 소련의 반종교 캠페인 연설에서 “가가린이 우주공간에 날아갔으나 그곳에서 어떤 신도 보지 못했다”고 한 말에서 비롯됐다고 했다. 양 원장은 “가가린이 34세에 비행기 추락으로 사망하자 이야기는 더 부풀려졌고 각색됐다”며 “아무리 설교자들을 유혹하는 ‘삼빡한’ 예화라도 틀린 것이 분명하다면 사용해서는 안 된다”고 덧붙였다.
식상한 예화는 어떻게 만들어지나
전문가들은 최고의 설교는 성경 본문에 충실하고 논리적이며 짜임새 있는 게 특징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는 설교자의 시각이다. 청중은 다르다. 그들은 익히 알고 있는 본문을 늘어놓는 설교에 따분해한다. 감동은 찾을 수 없고 설명만 이어지는 설교에 졸음이 밀려온다. 마치 창문 없는 집에 사는 것 같다. 그래서 찰스 스펄전은 “창문 없는 건물은 집이라기보다 감옥이다. 아주 어두워서 아무도 살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비유 없는 강화(講話)는 지루하고 재미가 없다. 그리고 심한 육체의 피곤을 가져온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설교에서 창문을 예화라고 말한다. 무미건조한 설교를 말랑말랑하게 해주는 현실 속 감동 이야기를 활용하자는 것이다. 생생한 예화는 본문의 주제를 선명하게 부각시킨다는 점에서 설교학에서도 주요한 이슈다. 문제는 상당수 예화가 낡았거나 불확실하다는 점이다. 서울신학대 정인교(설교학) 교수는 “본문의 맥락에 맞는 적절성과 주제를 드러내는 기능성, 팩트 전달의 진실성을 따져야 한다”고 말했다.
뻔한 예화나 식상한 예화는 ‘돌고 돌다’ 온 이야기들이 많다. 사랑의 원자탄 손양원 목사의 ‘9가지 감사’가 대표적이다. ‘9가지 감사’의 경우 인터넷 블로그에만 1만3598건이 검색될 정도다. 록펠러나 백화점 왕 워너메이커 등 성공 인물 사례도 자주 나온다. 주로 십일조나 주일성수를 강조하는 설교에 등장하는데 신자들 사이에선 호불호가 갈린다. 좋은 신앙인은 부의 축복을 받는다는 쪽과 십일조 내면 부자 된다는 주장은 비성경적이라는 쪽이다.
돌고 도는 예화는 소스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29일 한 설교자료 사이트에는 예화만 2324개를 모았다고 표시돼 있었다. 클릭해보니 절기 설교용을 비롯해 묵상 자료, 고전예화 등 다양했다. 대부분이 경구거나 짧은 잠언류였다. 관련 도서도 많이 나와 있다. 인터넷 서점 예스24에서는 ‘설교 예화’ 도서가 66건 검색됐다.
목회자들의 반응도 시큰둥하다. 인천의 김모 목사는 “예화는 새로워야 하는데 인터넷 사이트나 예화집 내용은 이미 공개된 것이어서 활용이 조심스럽다”고 말했다. 미국의 대중적 설교 사이트인 ‘서먼스닷컴(sermons.com)’에서도 예화를 제공한다. 유료로 운영되며 시간 없는 설교자를 위해 각종 예화를 제공한다. 그러나 대부분 ‘유통기한’이 지난 경우가 많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1주일에 많게는 10편의 설교를 해야 하는 한국 목회자 입장에서 참신하고 감동적인 예화를 찾는다는 건 쉽지 않다. 요즘은 좋은 예화를 편집하거나 짜깁기만 해도 교인들은 금세 눈치 챈다. 서울의 한 목회자는 “설교를 들으면서 스마트폰으로 검색하는 신자들도 있다”며 “뻔한 예화는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고 혀를 내둘렀다.
말씀이 드러나는 예화를 위해
좋은 예화를 구사하기 위해서는 고도의 집중이 요구된다. 목회자들은 신문 잡지 도서를 비롯해 TV 유튜브 영화 등을 체크한다. 부지런한 목회자들은 위키피디아에 등장하는 약력이나 시구, 유명 신학자의 저작이나 고전에서 발췌한 문구까지 스크랩한다. 최근엔 책을 요약해주는 잡지가 인기가 높고 페이스북에 올라온 읽을거리도 활용하는 추세다. 설교자의 체험을 바탕으로 한 예화를 만들기 위해 직접 여행을 떠나거나 취미생활을 하는 경우도 많다.
미국 칼빈신학교 코넬리우스 플랜팅가 명예총장은 잡다한 내용의 예화를 수집하지 말고 차라리 깊이 있는 예화를 개발하라고 충고한다. 그는 ‘설교자의 서재’(복있는사람)에서 “장편소설 한 권을 정독하면서 꼼꼼히 메모하고 저장하면 소중한 보화가 될 것”이라며 “1년에 소설 한 권, 전기 한 권, 시집 한 권을 읽고 ‘Arts&Letters Daily’(전 세계 문화·미술계 뉴스 웹사이트)를 1주일에 한 번씩 방문하는 것을 추천한다”고 말했다.
정인교 교수는 “설교자들은 새롭고 감동적인 설교를 위해 예화 발굴에 힘써야 한다”며 “그러나 예화는 주(主)가 아니라 종(從)이기에 본문 메시지를 드러내는 것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신상목 기자 smshin@kmib.co.kr
[시선] “돌고 도는, 뻔∼한 설교 예화 그만 듣고 싶어요”
입력 2015-01-31 03: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