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전 대통령이 다음 달 2일 퇴임 후 처음으로 내는 재임시절 회고록 ‘대통령의 시간’에는 남북관계에 대한 ‘비화’가 상세하게 기술돼 있다. 이 전 대통령은 회고록에서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 북한으로부터 여러 채널로 수차례 접촉 시도를 받았으나 응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평양과 서울 뉴욕 베이징 3단계 접촉=28일 국민일보가 입수한 회고록에 따르면 이 전 대통령은 “남북정상회담을 논의하자는 북한 측의 대화 공세는 계속됐다”고 했다. 이 전 대통령은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5일 뒤인 2009년 8월 23일 청와대 본관 접견실에서 북한 조문단을 접견했던 상황도 상세하게 소개했다. 당시 김기남 북한 노동당 비서는 남북정상회담을 제안했다. 이에 이 전 대통령은 “김정일 위원장에게 꼭 전해주실 말씀이 있다”면서 “그동안 북한이 ‘북핵 문제는 북·미 간의 문제이니 남한은 빠져라, 남한은 경제 협력이나 하면 된다’고 주장해 왔는데 나는 그에 대해 달리 생각하고 있다는 점”이라고 답변했다고 한다.
2009년 10월 10일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한·중 정상회의 오찬 당시 원자바오 총리는 “내가 듣기론 남북한 실무자들 사이에 남북정상회담 논의가 오간 것으로 알고 있다”며 “내가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났는데 정상회담을 하기를 바라고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해 10월 24일에도 원자바오 총리는 태국 후아힌에서 열린 ‘아세안+3 정상회의’에서 이 전 대통령과 만나 남북정상회담을 권유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이 전 대통령은 “북한이 제시하는 조건이 너무 까다롭다”며 “나는 조건 없는 남북정상회담을 바랐는데, 김정일 위원장이 왜 그런 식으로 하는지 알 수 없다”고 답했다.
2011년 초 미국 뉴욕에서 유엔 주재 북한대사와 외교 채널 차원에서 접촉도 있었다. 이 또한 천안함 폭침에 대한 사과 수준에 이견이 좁혀지지 않아 무산됐다고 한다. 그해 5월 뉴욕 접촉이 무산된 후 또다시 베이징에서 남북한 정부 차원의 접촉이 있었다. 통일부 차관이 우리 측 대표로 나갔지만 여전히 천안함 사과 문제로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이 전 대통령은 당선 직후 한 목사로부터 “북한이 이명박 당선인의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할 용의가 있다고 한다”는 제의를 받기도 했으나 북한의 정치적 목적을 의심해 거절했다고 밝혔다.
◇중국의 대북 관계 변화 이끌어내=이 전 대통령은 북한의 천안함 폭침에 대한 국제사회 대응을 이끌어내기 위해 중국을 설득한 내용을 상세히 풀어놨다. 그는 천안함 폭침 직후인 2010년 5월 중국 상하이엑스포 개막식에 참석해 후진타오 주석과 정상회담을 가졌다. 이 전 대통령은 당시 후진타오 주석에게 “천안함 사건에 대한 합동조사단 결과가 나오면 중국이 공정한 입장을 취해줄 것을 당부한다”고 부탁했다고 한다.
합동조사단은 2010년 5월 20일 ‘천안함은 북한제 어뢰에 의한 외부 수중 폭발의 결과로 침몰했다’는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 전 대통령은 곧바로 한·중·일 정상회의 참석차 방한한 원자바오 총리를 청와대에서 만났다. 이 전 대통령은 이때 우리 정부가 입수한 북한의 어뢰 설계도 사진과 폭침 현장에서 발견된 숫자 ‘1’이 적힌 어뢰 잔해 사진을 보여주며 천안함 폭침이 북한 소행임을 설명했다고 한다.
이 전 대통령은 원자바오 총리로부터 “중국은 누구도 비호하지 않을 것”이라는 답을 받아냈다. 이 전 대통령은 중국의 소극적인 태도가 북한을 오판하게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적었다. 이 전 대통령은 “그냥 넘어갈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 ‘자식도 늘 들어주기만 하면 나쁜 버릇을 영영 못 고친다. 어렵더라도 한 번은 바로잡아야 한다’고 말했다”고 회고했다.
이 전 대통령은 5·24조치를 유엔 안보리에 상정하는 과정에서 중국을 설득했던 장면도 설명했다. 이 전 대통령은 2010년 6월 G20 정상회의 도중 한·중 정상회담을 마련해 후진타오 주석을 만난 뒤 협조를 부탁했다. 하지만 여전히 한발 물러서는 태도를 보인 후 주석에게 이 전 대통령은 강한 어조로 “이 문제로 한국과 중국이 서로 얼굴 붉힐 일이 없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 전 대통령은 “내 발언에 후진타오 주석은 당황한 듯 배석한 사람들을 돌아봤다”고 썼다.
후 주석은 그러나 회담이 끝나자 이 전 대통령의 손을 잡고 “말씀을 충분히 알아들었다. 유엔 안보리에 상정된 건이 잘 해결되리라 본다”고 말했고, 그해 7월 9일 천안함 폭침 관련 유엔 안보리 의장성명서가 채택됐다.
김경택 전웅빈 기자 ptyx@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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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5-01-29 04:58 수정 2015-01-29 09: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