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히스토리] 싸이도 놀란 ‘입소문 광고’의 마법

입력 2015-01-30 00:09
인기연예인이 편의점과 마트 7곳을 돌아다녀도 못 구했다. 구하기 어렵자 '생산 중단'됐다는 루머까지 떠돌았다. 3배가 넘는 프리미엄이 붙었다. 이쯤 되면 '아, 그거!' 할 것이다. 해태제과의 허니버터칩 얘기다. 몇 해째 이어지던 과자 업계의 불황을 털어낼 만큼 '초대박 상품'인 허니버터칩. 그 시작은 초라했다. 해태제과는 지난해 8월 출시 당시 보도자료조차 내지 않았다. 물론 광고도 하지 않았다. 소리 소문 없이 마트와 편의점에 나붓이 진열돼 있던 허니버터칩을 세상에 요란스럽게 소개한 것은 인기연예인들의 인스타스램이었다.

“너 요즘 나한테 왜 그래···매력 발산하지마!! 나에게 제발 멀리 떨어져!!” 여배우 소유진은 지난해 11월 초 인스타그램에 허니버터칩 사진을 올렸다(사진 (1)). 소이도 “허니버터칩 한 봉지에 삶의 희망을 보았다”며 먹는 사진을 올렸다. 강민경은 “편의점을 다섯 군데 마트를 두 군데. 어디에도 너는 없다. 환상 속의 과자일 뿐이다. 음모가 있어”라고 하소연 하는 글을 올렸다.

인기연예인들의 예찬을 누리꾼들이 퍼 나르면서 허니버터칩은 출시 3개월 만에 100억원어치 넘게 팔렸다. 지금도 그 인기는 이어지고 있다. 29일 현재 인스타그램에는 21만여건의 허니버터칩 관련 사진이 올라와 있다. 아직도 허니버터칩을 맛보지 못한 이들이 마트와 편의점을 순례하고 있다는 전설(?)이 떠돌고 있다.

마켓캐스트 김형택 대표는 “허니버터칩의 성공은 100% 바이럴마케팅의 효과”라고 말했다. 바이럴 마케팅(viralmarketing)은 컴퓨터 바이러스처럼 확산된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바이럴마케팅은 기업이 직접 홍보를 하지 않고 소비자의 이메일 등 SNS를 통해 입에서 입으로 전해진다. 일종의 입소문마케팅이다.

입소문의 힘을 보여주는 가장 오래 된 사례는 ‘서동요’가 아닐까 싶다. 백제 무왕(재위기간 600∼641)이 소년 시절 신라의 선화공주를 얻기 위해 그녀와 ‘밤 데이트를 했다’는 노래를 지어 아이들에게 부르게 했다. 결국 무왕은 선화공주를 얻었다.

우리나라 현대기업의 첫 입소문 마케팅으로는 ‘샘표’의 간장 방문판매를 들 수 있다. 1946년 설립된 샘표는 당시 대부분의 가정에서 담가 먹던 장을 제조해 판매에 나섰다. 샘표는 사먹는 장은 보관도 편리하고, 맛을 내는 데도 유용하다는 입소문을 내기 위해 주부사원을 고용해 각 가정을 방문했다.

1995년 첫선을 보인 만도(현 대유위니아)의 딤채가 펼친 입소문 마케팅은 영국 헐대학 경영대학원(MBA)의 교재에도 소개될 만큼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자동차부품 회사였던 만도가 내놓은 첫 가전제품인데다 듣도 보도 못한 김치냉장고였으니 판매가 잘될 리 없었다. 대유위니아 홍보팀 김만석 팀장은 “당시 소비자에게 한번 써보게 하는 것이 가장 급선무여서 효능을 소문내줄 수 있는 ‘빅마우스’이면서 신뢰도가 있는 여성들을 찾아 무료체험기회를 주었다”고 했다. 입소문을 타기 시작한 딤채는 첫해 4000대가 팔려 나갔다. 이듬해에는 2만대, 1997년 8만대, 2002년에는 74만대가 팔려나가면서 필수 가전제품으로 자리 잡았다.

입소문마케팅은 인터넷이 생활화되면서 날개를 얻었다. 인터넷 초창기 가장 큰 반향을 일으킨 것은 블로그를 통한 입소문이었다. 2003년 네이버에서 서비스를 시작한 이후 블로그 활동에 대거 참여한 주부들이 입소문마케팅의 첨병이 됐다. 파워 블로거들의 블로그에는 하루 방문자 수가 수천 명이나 됐다. 입소문에 가속도가 붙을 수밖에 없었다. 2008년 12월 소형 오븐 전문 기업 컨벡스코리아는 주부 블로거와 공구 이벤트를 통해 닷새 만에 1300대의 오븐을 판매할 정도로 광고 효과가 컸다.

스마트폰의 보급과 SNS의 활성화는 입소문 마케팅의 또 다른 장을 열게 됐다. 홍보대행사 에이엠피알 신명희 이사는 “페이스북, 트위터, 인스타그램 등 SNS의 활성화로 입소문의 확산속도가 폭발적으로 빨라지면서 입소문마케팅은 새롭게 주목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SNS에 동영상이 첨부되면서 그 효과는 엄청 났다. ‘동영상 콘텐츠를 이용한 바이럴마케팅’이란 뜻의 ‘동영상바이럴’이란 신조어가 생겨날 정도다.

동영상바이럴의 가장 성공적인 사례는 싸이다. 유투브가 없었다면 싸이가 ‘월드 스타’가 될 수 있었을까? 강남스타일의 신나는 리듬과 재치 있는 가사도 좋지만 말춤을 볼 수 없었다면 외국인들의 호응은 이끌어내기 어려웠을 것이다(사진 (2)). 기업의 성공적인 동영상바이럴로는 김보성의 ‘으리’ 동영상이 꼽힌다. 그를 모델로 캐스팅한 화장품 ‘이니스프리’의 남성 로션과 팔도 비락식혜는 대박이 났다. 그뿐이 아니다. 한물간 배우로 인식됐던 김보성은 제2의 전성기를 누리게 됐다(사진 (3)).

물론 모든 바이럴마케팅이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소비자들의 외면 속에 사라지는 것도 부지기수다. 해태제과 홍보팀 소성수 팀장은 “자발적인 참여자가 지속적으로 있어야 하기 때문에 제품력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결코 성공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바이럴마케팅은 신문 TV 등 전통매체를 통한 것보다 광고비가 적게 든다. 또 시간제한이 없고, 일단 성공하면 전통 매체에도 소개돼 몇 배의 홍보효과를 누릴 수 있다. 기업들이 앞다퉈 바이럴 동영상을 제작하는 등 온라인 매체를 활용한 광고에 열을 올리고 있는 이유다.

실제로 2012년에 비해 2013년의 광고비를 보면, 지상파 TV는 1조9307억원에서 1조8273억원으로 5.4%, 신문은 1조6543억원에서 1조5447억원으로 6.6% 각각 감소했다. 반면 유선인터넷은 1조9540억원에서 2조30억원으로 2.5%, 모바일 광고는 2100억원에서 4600억원으로 무려 119%나 늘었다. 특히 제일기획은 2014년에는 모바일광고가 7750억원으로 2012년에 비해 270% 증가할 것으로 보고 있다.

활성화되고 있는 온라인 매체의 바이럴마케팅은 문제점도 적지 않다. 제일기획 캠페인 11팀 신찬섭 팀장은 “바이럴 동영상들은 광고라도 심의를 받지 않아 객관성과 신빙성이 떨어지는 것도 적지 않은데 일부 소비자들은 신문 방송보다 더 믿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신명희 이사도 “바이럴 동영상은 공개 즉시 이목을 끌어야 성공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영상이 지나치게 자극적으로 흘러가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바이럴마케팅은 누리꾼 입맛에 맞는 엽기적인 내용이나 재미있고 신선한 내용의 웹 애니메이션을 제작해 인터넷 사이트에 무료로 게재하면서 그 사이에 기업의 이름이나 제품을 슬쩍 끼워 넣는 방식이 대부분이다. 소비자들이 무의식적으로 광고를 접하게 된다는 의미다. 따라서 소비자들의 비판적 의식이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

김혜림 선임기자 ms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