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패션잡지 보그의 편집위원인 케이티 머론은 외국 도시를 방문할 때마다 공원에 들른다. 파리의 뤽상부르 정원은 그녀가 스물셋에 처음 만난 후 가장 좋아하는 공원이 되었다. 어느 날 문득 그녀는 세계의 공원에 대한 책을 만들겠다고 결심한다.
케이티는 먼저 보그와 작업해온 패션 사진가 오베르토 질리를 끌어들인다. 그리고 전 세계에서 작가들을 수배했다. 그렇게 해서 18개의 공원을 주제로 한 18편의 에세이, 거기에 멋진 사진들을 더한 한 권의 책을 완성했다.
‘도시의 정원’에는 소설가, 작가, 교수, 언론인, 건축가, 배우, 정치가 등이 참여했다.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도 워싱턴 D.C의 공원 ‘덤버턴 오크스’ 편을 맡았다. 그는 “책 한 권 들고 벤치에 앉으면 철문 너머의 삶은 두 시간 남짓 가마득하게 잊을 수 있었다”고 썼다.
사진과 에세이의 조합은 언제나 지나칠 수 없는 매력을 풍긴다. 쳐다보게 만든다. 더구나 공원이라니. 페이지를 넘겨보지 않을 수 없다. 부커상 최종 후보에 올랐던 작가 아다프 수에이프가 알 아자르 공원(이집트 카이로)에 대해 쓴 첫 글에서부터 사로잡히고 만다.
“우리는 독재에서 민주주의로, 억압에서 자유로 변화하고 있다. 말로만 그치지 않고 우리는 끝내 그곳에 이를 것이다. 이상 세계에서는 경비원도, 벽도, 입장료도 없을 것이다. 대신 카이로 전역에 아자르 같은 공원이 못해도 스무 군데는 생겨서 시민 100만 명당 하나씩 공원을 갖게 될 것이다.”
알 아자르 공원이 카이로 시민들이 마침내 쟁취할 자유의 모습으로 포착된다면, 일본 교토의 마루야마 공원은 교토라는 고도(古都)의 분위기를 가장 완벽하게 느낄 수 있는 공간으로 소개된다.
“세속적이고 일견 세계적으로 보일 만큼 현대적이면서도 한편으론 고대의 기억과 신들로 가득한 마루야마 공원보다 교토를 더 잘 보여주는 곳이 있을까?”
책에는 파리의 뤽상부르 공원, 런던의 하이드 공원, 뉴욕의 하이라인 공원 등 널리 알려진 공원들이 많지만 소치밀코 생태공원(멕시코 멕시코시티), 마이단(인도 캘커타), 자르디노 푸블리코(이탈리아 트리에스테)처럼 평소 가보기 어려운 공원들도 나온다.
저자들은 아무런 통일성도 없이 자유롭게 이야기를 펼친다. 어떤 이는 공원에 대해, 어떤 이는 도시에 대해, 어떤 이는 개인적 추억에 대해 얘기한다. 어떤 글은 단편 소설로 읽히고, 어떤 글은 여행기로, 또 어떤 글은 역사 이야기로 다가온다. 그러다가 어떤 문장, 어떤 사진 앞에 눈길이 붙잡히면 한동안 머물기도 한다. 언젠가 이 책을 들고 가 그 문장, 그 사진을 확인해보고 싶다는 꿈도 꾸게 된다.
여기 묶인 글들에 유일한 공통점이 있다면 공원의 발견이라고 할 것이다. 이들은 공원을 도시와 시민, 역사와 문화, 개인적 삶과 추억의 공간으로 조명한다.
케이티는 “뤽상부르 공원과 함께 성장했다”고 고백했으며 역사학자 어맨다 포맨은 “내가 하이드 공원을 사랑하는 까닭은 그곳이 바다처럼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동시에 예나 지금이나 한결같은 모습을 유지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하이라인 공원 편에서 뉴욕시립대 교수 앙드레 아시망은 “그곳에서 우리는 저마다의 방식으로 ‘그때와 지금’이라는 수수께끼 같은 난제와 대면하게 된다”고 썼다.
열여덟 개의 짧은 이야기들을 읽다 보면 잠깐이나마 여행을 하는 듯한 느낌을 갖게 된다. 그런 시간은 작은 기쁨을 준다. 어쩌면 공원이란 존재도 그런 것인지 모른다. 도시의 작은 경이, 일상의 작은 행복. 이 작은 기쁨이 삶과 도시를 계속 지탱하게 하는 힘이라는 걸 이 책은 알게 한다. 공원이 없다면 도시는 어떻게 될 것인가? 공원에서 산보하거나 심호흡하는 시간이 없다면 우리 삶은 또 어떨 것인가? 여행이나 독서, 산책도 마찬가지다.
김남중 기자 njkim@kmib.co.kr
[책과 길] 공원, 도시의 작은 경이
입력 2015-01-30 01: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