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당국이 은행권 기술금융에 올인하고 있다. 기술금융 및 보수적 금융관행 개선 실적을 압박하면서 ‘채찍’을 가하고, 실적이 우수한 은행에는 인센티브라는 ‘당근’으로 은행권 ‘줄 세우기’에 나섰다. 하지만 평가 배점에서 기술금융 실적이 사실상 절반을 차지해 ‘기술금융=혁신’이라는 공식을 주입한 데다 이를 성과보수체계와 연계해 은행권의 부담이 커질 전망이다. 자칫 기술금융이 거품으로 이어지면 은행에 돈을 맡긴 국민들 부담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금융위원회는 신제윤 위원장 주재로 28일 ‘제1차 금융혁신위원회’를 열고 지난해 하반기 은행 혁신성 평가 결과를 발표했다. 신 위원장은 “금융권의 보수적이고 낡은 관행을 끝까지 혁신해 자금중개기능을 한층 강화하겠다”며 “혁신성 평가 결과와 보수총액을 함께 공시하고 임직원의 성과보상체계와 연동시켜 창의적 금융인이 우대받는 문화를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시중은행 8곳 가운데 신한은행이 82.65점으로 1위를 차지했고, 지방은행 7곳 중에서는 부산은행이 79.20점으로 가장 좋은 점수를 받았다. 공교롭게도 혁신성 평가 순위는 기술금융 실적 순위와 비슷하다. 시중은행 가운데 신한·우리·하나은행이 각각 1·2·3위를 차지했는데, 지난해 12월 말 기준 기술금융 실적(신한 1조7360억원, 우리 1조3123억원, 하나 1조183억원) 순위와 같다. 기술금융 실적이 가장 많은 곳은 기업은행(2조2165억원)이지만 기업·산업·수출입은행 등 특수은행 3곳은 공공부문을 지원하는 특성상 순위가 공개되지 않았다. 반면 기술금융 실적이 낮은 외국계 SC은행(51억원)과 씨티은행(74억원)은 혁신성 평가에서도 최하위권이었다. 지방은행에서도 부산은행(1510억원)과 대구은행(1544억원)이 최상위권을 차지했다. 기술금융 실적이 낮은 수협(830억원)과 제주은행(4억원)은 혁신성 평가 순위도 바닥권이었다.
이는 기술금융 관련 항목이 전체 배점의 절반에 달하기 때문이다. 혁신성 평가 배점은 100점 만점에 기술금융 40점, 보수적 금융관행 개선 50점, 사회적 책임이행 10점으로 구성돼 있다. 보수적 금융관행 개선 분야에서 중소기업 대출실적과 신용대출 비중(10점)도 사실상 기술금융과 관련돼 있다고 보면 기술금융 배점이 50점이다.
혁신성 평가 순위가 높은 은행은 신용보증기금과 기술신용보증기금 출연료 인하 등 인센티브를 받는다. 상위 2개 은행에는 출연료의 10(지방은행)∼20%(일반은행) 감면혜택을 주고 하위 3개 은행 출연료는 감면분만큼 할증된다. 또 평가결과를 임직원 성과 평가에 연동시켜 내년부터 성과급도 차등 지급할 예정이다.
반기에 1회씩 시행하는 혁신성 평가는 전기 대비 실적이 부진하면 점수를 깎는 구조로 설계돼 은행 입장에서는 울며 겨자 먹기로 기술금융에 매달릴 수밖에 없다. 김용범 금융위 금융정책국장은 “일률적인 기준이 아니라 여러 지표를 고려했다”면서도 “중소기업 금융 비중이 70%, 가계 비중이 30%인 은행이 중소기업 비중 30%, 가계 비중 70%인 은행보다 유리한 건 사실”이라고 털어놨다. 이어 “이번 평가는 중소기업 대출과 같은 고유기능을 잘하는 은행에 정책적 인센티브를 주겠다는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산업은행도 모험자본 육성에 발 벗고 나섰다. 홍기택 산업금융지주 회장은 서울 여의도 본점에서 신년 기자간담회를 열고 “정책금융기관으로서 민간 참여가 어려운 영역에서 위험부담자(Risk taker) 역할을 수행하겠다”며 “창업·벤처 기업에 10조5000억원을 투자하는 것을 비롯해 63조원의 자금을 공급하겠다”고 말했다. 10조5000억원은 지난해 실적보다 3조3000억원 늘어난 금액이다.
백상진 박은애 기자 sharky@kmib.co.kr
기술금융에 꽂혀… 실적 등수 매기며 은행 짓누르는 당국
입력 2015-01-29 0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