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전석운] 테러공포 남의 일 아니다

입력 2015-01-29 03:54 수정 2015-01-29 17:37

벌써 18일째다.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 ‘IS(이슬람국가)’에 가입하겠다며 터키로 떠난 것으로 알려진 김모(18)군은 지난 10일 이후 행적을 감췄다. 국정원과 경찰, 외교부가 조사에 나섰지만 실종인지, 납치인지, 자발적 여행인지 단정하지 못하고 있다. 다만 김군의 컴퓨터 바탕화면에 깔린 메시지나 SNS 문자 등을 토대로 추정하면 그가 자발적으로 IS를 찾아간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

김군이 현재 어떤 상태인지는 모른다.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우리 앞에 다시 나타날지 예단하기는 더욱 어렵다. 하지만 김군의 사례는 중동과 유럽에서 일어나는 일로만 여겨졌던 극단주의 테러리스트의 위협이 우리 가까이에서 일어날 수도 있다는 우려를 낳게 한다.

무엇보다 김군이 어려서부터 학교폭력에 시달리다 학교를 그만둔 위기청소년이었다는 데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김군은 초등학교 6학년 한 해에만 세 번 학교를 옮겼을 만큼 심각한 학교폭력의 피해자였다. 중학교에 진학했지만 겨우 이틀만 나간 뒤 학교를 그만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후에는 인터넷 게임이나 SNS 등 사이버 세상에 빠져 은둔형 외톨이로 살았다는 게 주변의 증언이다. 극단주의자들의 유혹에 쉽게 빠질 만한 환경에 노출돼 있었다.

전 세계를 놀라게 한 파리 샤를리 엡도 테러범들도 위기청소년 출신이었다. 예언자 무함마드를 모욕했다며 주간지 샤를리 엡도에 난입해 12명을 살해한 쿠아치 형제는 어려서 부모를 잃고 프랑스 남부 작은 마을에서 한 복지재단이 운영하는 기숙학교를 다녔다. 학교를 마친 뒤 파리 외곽 낙후 지역으로 거처를 옮겼으나 피자배달 말고는 달리 직업을 구할 길이 없었다. 분노와 좌절을 키우고 있던 형제는 인근 이슬람사원에서 만난 극단주의자의 영향을 받아 충동적으로 테러리스트를 꿈꾼다. 그러나 2005년 시리아로 떠나기 직전 극적으로 경찰에 체포됐다. 이 때만 해도 이들은 어설픈 아마추어들이었다. 총을 들고 ‘순교’하는 게 속으로 겁이 났다는 형제는 감옥행이 차라리 마음 편했다고 경찰 조사에서 털어놓았다.

그런 형제들을 무자비한 전사로 바꿔놓은 건 감옥이었다. 프랑스에서 체포된 이슬람 테러리스트들이 모두 한 감옥에 수감돼 있었던 탓이다. 형제들은 거기서 전설적인 테러리스트를 만나면서 이후 정상적인 삶으로 돌아올 수 있는 기회를 영영 놓쳤다. 나중에 유대인 식료품점에서 인질 살해극을 벌인 쿨리발리를 처음 만난 곳도 이 감옥이었다.

쿠아치 형제가 풀려난 2009년 이후 프랑스 경찰은 이들의 전화를 도청했지만 테러를 미리 막지 못했다. 2010년 경찰은 이들 형제가 모종의 테러를 시도한다는 낌새를 채고 급습했다. 동생 셰리프의 컴퓨터에서는 ‘희생작전’이라는 제목이 붙은 문서가 발견됐다. 그 문서에는 ‘무자헤딘은 퇴로를 차단하고 적의 기지에 들어가 조준사격으로 많은 이들을 사살한 뒤 스스로 최후를 마친다’는 문장이 있었다.

하지만 셰리프를 ‘증거 불충분’으로 풀어주게 된다. 그때 조금 더 주의를 기울였더라면 쿠아치 형제의 테러를 미리 막을 수 있었는지 모른다.

김군이 IS를 만난 뒤 후회를 하고 있다면 그는 지금 매우 난처한 상황에 놓여 있을 것이다. 탈출을 시도하다가 억류된다면 인질로 전락할 수도 있다.

더 큰 위험은 제2, 제3의 김군이 나타날 가능성이다. 분노와 좌절을 다스리지 못해 IS를 쫓아가는 청소년들이 생긴다면 이는 심각한 국가안보 상황이다. 당국은 청소년들을 유혹하는 극단주의자들의 접촉을 차단하고, 사이버 안보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외로운 늑대’ 즉 자발적 테러리스트의 출현을 막으려면 사회안전망을 이탈하는 낙오자들이 생기지 않도록 해야 한다. 학교폭력을 근절하고 위기청소년을 배려하는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감옥이 범죄학교로 전락하지 않도록 세심한 교화 프로그램을 짜야 한다. 늘 후회는 늦기 마련이다.wch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