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공립대학들이 새 학기를 앞두고 등록예치금이란 정체불명의 돈을 학생들로부터 걷기로 해 논란이 일고 있다. 사립대 등록금에 해당하는 기성회비를 법원이 징수하지 못하도록 막자 나온 ‘꼼수’다. 교육부가 “법적 근거가 없는 돈을 걷으면 안 된다”며 만류하지만 요지부동이다.
학생을 볼모로 벌어지는 ‘치킨 게임’의 속사정은 뭘까. 그 이면에는 대학의 기득권 지키기와 국회의 정치력 부재가 뒤엉켜 있다.
◇국공립대 ‘발등에 불’=지난해 법원은 기성회비의 법적 근거가 없다고 판결했다. 대법원의 최종 판단이 남아 있지만 뒤집힐 가능성은 희박하다. 국공립대는 그동안 기성회비로 재정의 70∼80%를 충당해 왔다. 기성회비가 사라지면 올해부터 국공립대 운영은 사실상 불가능해진다.
교육부는 두 가지 대비책을 만들었다. ‘플랜A’는 기성회비 대신 수업료를 올리는 내용의 국립대 재정회계법(이하 회계법)이다. 국공립대 등록금은 수업료와 기성회비로 구성되는데 회계법이 통과되면 기성회비는 수업료로 통폐합된다. ‘플랜B’는 기성회비만큼 수업료를 올려서 걷고, 이 돈을 국고로 회수해 국공립대에 재분배하는 것이다. 대학을 정부기관으로 취급해 수입을 보전해주는 방식이다.
대학들은 회계법 통과를 낙관했지만 국회에서 난항을 겪자 다급해졌다. 신입생 등록금 고지 기한(1월 말)은 다가왔고 기성회계 종료(2월 말)도 임박했다. 플랜B가 가동되자 국공립대 총장들이 반대하고 나섰다. 41개 국공립대 총장 모임인 전국 국공립대학교 총장협의회는 기성회비 대신 등록예치금을 받아 대학별로 보관하기로 지난 22일 결의했다. 또 “대학 자율성을 보장하는 별도 회계 운영”을 정부에 촉구했다.
◇‘교수 인건비’가 원인=대학들이 집단 반기를 든 배경에는 교수들에게 지급하는 인건비에 해당하는 수당이 있다. 국공립대 교수들은 기성회비에서 지출되는 연구비 성격의 수당을 받는다. 한해 평균 1500만원 정도다. 그런데 돈이 국고로 들어갔다가 나와 재분배되면 이 수당을 한 푼도 받지 못하게 된다. 정부 일반회계의 엄격한 규정이 적용되는 탓이다.
이 때문에 대학들은 등록예치금을 걷어 보관하면서 회계법이 통과될 때까지 시간을 벌 생각이다. 회계법은 대학별로 학교회계를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교육부 요구대로 수업료가 국고로 들어간다면 나중에 회계법이 통과되더라도 돌이키기 어렵다. 이렇게 되면 국공립대의 모든 씀씀이는 정부 일반회계의 엄격한 잣대로 통제된다. 한 지방 국립대 회계담당자는 “일반회계 규정을 받으면 적재적소에 돈을 쓰기 어렵다. 또 학교회계를 하더라도 교육부 방침에 따라 인건비성 수당은 지급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반면 교육부 생각은 다르다. 교육부 관계자는 “종전처럼 학교회계로 돌아간다면 얼마든지 이유를 붙여 보전해주는 길이 열린다”고 반박했다. 이어 “국공립대 교수들이 사립대보다 낮은 임금을 받아왔고 이를 기성회비로 메워 온 점은 인정한다. 하지만 우수인력 유출 등의 우려가 있더라도 근거 없는 돈을 걷어 혼란을 야기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기성회비 대체 입법은 변수가 많아 다음 달 임시국회에서도 통과가 불투명하다. 야당은 학교비정규직 처우개선을 위한 교육공무직법과 회계법을 묶어서 처리하자고 주장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학교비정규직 문제로 골머리를 앓는 정부와 여당은 섣불리 ‘거래’에 응하기 어렵다. 여기에다 야당은 정부가 국공립대학에 재정 지원을 강화하는 내용의 기성회비 대체 법안들을 발의한 상태다.
이도경 기자 yido@kmib.co.kr
[이슈분석] 국공립대 등록예치금 ‘꼼수’ 이면엔… 대학 이익 지키기·정치력 부재 엉켜 혼란
입력 2015-01-29 03: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