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소강석] 우리 시대의 주홍글씨

입력 2015-01-29 01:18

‘주홍글씨’를 아는가. 미국 나다니엘 호손의 대표 소설로 청교도 목사 딤즈데일과 헤스터라는 여인의 금단의 사랑을 그린 작품이다. 작가는 소설을 통해 인간의 죄와 위선에 대한 통찰력을 보여주고 있다. 최근 한국에서 이 작품을 뮤지컬로 각색해 무대에 올렸다. 바쁜 일정 중에도 우리 교회에 출석하는 박은석 형제가 칠링워스 역으로 출연한다고 해서 관람했다.

나는 공연을 보면서 너무 가슴이 아팠다. 감옥이 아닌 세상의 정죄와 비난의 시선 속에 갇혀 사는 헤스터라는 여인의 기구한 삶이 마음을 아프게 했다. 그녀는 목사 딤즈데일과 불륜의 사랑에 빠져 아이를 갖게 된다. 이것이 문제가 되자 판사는 남자의 신원을 밝혀야 당신도 살고 뱃속의 아이도 산다고 독촉한다. 그러나 그녀는 끝까지 남자의 존재를 감춘다.

헤스터의 원래 남편은 인디언의 습격을 받고 실종됐다. 시간이 지나면서 헤스터는 남편이 죽은 줄 알고 딤즈데일과 사랑에 빠졌다가 아이까지 갖게 된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목사를 보호하기 위해 끝까지 그의 이름을 밝히지 않고 혼자 희생당한다. 주님의 교회와 마을공동체를 살리기 위해 간음죄를 상징하는 주홍글씨를 목에 걸고 홀로 감옥에서 아이를 낳는다. 이 모습을 지켜보는 목사는 죄를 고백하지 못한 괴로움에 시달린다.

딤즈데일이 번뇌하고 있을 때 한 의사가 방문한다. 그런데 그는 인디언과 전쟁에서 죽은 줄 알았던 헤스터의 전 남편이었다. 그는 딤즈데일 목사가 심각한 갈등과 번민을 겪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아내와 불륜의 죄를 지은 남자가 딤즈데일이라는 심증을 갖는다. 그때부터 딤즈데일 주변을 돌며 괴롭히고 점점 악의 화신으로 변하기 시작한다. 그는 아내가 임신한 아이의 아버지를 찾아야 한다며, 이 아이 때문에 흉측한 재앙이 마을에 닥칠 것이라는 말로 사람들을 혼란과 공포에 빠트린다.

그때 마을 판사가 헤스터의 집에 사는 소녀를 숲 속에서 성추행하는 장면을 이 의사가 목격하고 협박한다. 헤스터와 그 아이는 마녀이니 죽여야 한다고. 헤스터와 아이가 죽을 위기에 처하자 딤즈데일 목사는 자신이 아이의 아버지이고 여인과 사랑을 나눈 남자라고 고백한다. 그리고 그는 교수형을 당하며 이런 이야기를 남긴다. “더 이상 다른 사람들을 비난하거나 정죄하지 마십시오. 율법과 계율만이 전부가 아닙니다. 부디 사랑하며 용서하십시오.” 목사의 마지막 말을 들으면서 악의 화신도, 판사도, 모든 마을 사람들도 크게 감동을 받는다.

나는 목사로서 뮤지컬을 보며 솔직히 팔이 안으로 굽었다. 남편이 죽은 줄만 알았던 헤스터가 딤즈데일 목사와 사랑에 빠져 순간적으로 무너진 것인데 너무 가혹한 형벌을 받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작품은 묻는다. “과연 딤즈데일 목사의 출구는 없는가. 헤스터의 또 다른 삶의 길은 없는가.” 작가는 주장한다. “차가운 정죄와 비난의 화살만이 해법이 아니다. 그것은 결국 미움과 증오만 가득한 에덴의 동쪽을 만드는 것이다.”

오히려 작가는 오늘 우리 시대의 주홍글씨라는 위선과 가식을 고발한다. 악의 화신이 등장하면서부터 마을은 혼란과 공포로 소용돌이친다. 그러나 실제로는 판사를 비롯해 마을 사람들의 위선이 악의 화신에게 역이용당한 것이다. 목사가 교수형에 처해지면서 모든 것이 해결된 것처럼 보이지만 남은 것은 상처와 폐허뿐이었다.

작가는 이 뮤지컬에 한국교회뿐 아니라 오늘 이 시대의 모습을 반사시키고 있다. “우리 시대의 주홍글씨는 무엇인가. 위선과 가식이 아닌가. 그 주홍글씨가 우리를 옭아매고 있지 않는가.” 그렇다. 지금 우리의 생각과 행동의 동력, 아니 우리가 앞세우는 율법과 도덕, 윤리, 나의 말과 행동까지도 악의 화신에 의해 조종당하고 있진 않는가. 우리 시대의 주홍글씨에 옭아매어 있지 않는가. 한국의 대형교회들도 주홍글씨 때문에 서로 정죄하고 비난하며 상처받고 있다. 한국교계가 찢어지고 나눠진 것도 이 때문이다. 더 이상 우리 시대의 주홍글씨로 정죄하지 말고 사랑과 용서의 마음을 갖자. 물론 지도자는 넘어지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우리 시대의 주홍글씨도 지워야 할 때다. 그 주홍글씨를 지우기 위해 십자가를 지신 그리스도의 용서와 사랑의 가슴으로 돌아가자.

소강석 목사(새에덴교회·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