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열며-손영옥] 여성이 대통령인 나라라고?

입력 2015-01-29 02:20

여자들에게 친구는 두 부류가 있다. 이른바 ‘직장맘’과 ‘전업맘’이다. 두 부류 사이엔 묘한 간극이 있다. 애 키우는 얘기, 시댁 얘기 할 때는 잘 통한다. 그러다가도 직장 생활에 관한 주제만 나오면 서로가 공유 못하는 자장(磁場)이 형성돼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사표 던지고 싶은 무수한 순간들을 견디며 지내온 직장을 자아실현하러 다니는 곳쯤으로 치부할 땐 서운함을 넘어 부아가 치민다. ‘너희가 전쟁 같은 조직 생리를 어찌 알겠니’라고 말하고 싶은 걸 꾹 참기도 한다.

육아휴직을 1년 하며 전업주부의 세계를 경험할 기회를 가진 적 있다. 은행에 가는 일부터 아이들 담임선생님을 만나고 학원을 알아보는 교육 문제, 나아가 집안의 경조사 챙기는 일까지 시간이 많다는 이유로 아내의 몫으로 떨어진다. 전업주부도 한가할 틈이 없었다.

전업주부의 가장 큰 문제는 그들의 시간이 가족을 위해 조각조각 쪼개지며 누더기가 된다는 것이다. 아이가 영유아 때는 ‘껌딱지’처럼 붙어 있기에 감기몸살이 걸려도 병원 한번 제때 가보지 못하는 게 전업맘들이다. 커서 어린이집에, 초등학교에 보내면 사정이 좀 나아진다. 그렇더라도 그들의 시간은 뭔가를 도모하기에는 어정쩡하다. 설거지와 집안 청소를 마치고 조금 생긴 여유를 활용해보려고 하면 그 사이 초인종을 누르고 현관문을 들어서는 아이. 그때 엄마는 집에 있어야 한다는 사회적 통념이 부여한 강박관념과 경력단절을 끝내고 재기하고 싶은 욕망 사이에서 전업주부들은 갈팡질팡한다. 치열한 내면의 전쟁을 치르고 나더라도 끝이 아니다. 호락호락 문을 열어주지 않는 거대한 벽 앞에서의 좌절이 기다린다.

최근 불거진 정부의 보육체계 개편 논란은 남성 위주로 굴러가는 한국사회에서 전업주부의 시간이 어떻게 취급받는지 여실히 보여준 사건이다. 인천의 어린이집 등에서 잇달아 벌어진 보육교사들의 폭행사건은 공분을 사기에 마땅하다. 믿고 맡기기엔 어린이집은 불안했다. 정부 대책은 보육교사 자질 개선을 위한 인성교육 강화나 처우 개선에 모아지는 것으로 끝났어야 했다.

그런데 애먼 전업주부가 대책에 동원됐다. 전업주부가 아이를 어린이집에 덜 맡기게 가정 양육수당 인상을 검토한다는 게 말이 되는가. 애초 공급 확대로 풀어야 할 문제를 수요 차단으로 해결하겠다는 발상부터 잘못됐다. 그래서 복지부 장관 입에서 “(전업주부들의) 불필요한 보육시설 이용 수요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말이 나왔을 터다. 교육부 장관은 “2세 미만 영아는 어머니와의 애착관계가 중요하다”고 거들었다.

문제는 이런 발언의 근저에 똬리 튼 주무부처 장관들의 사고체계다. 다 남성 장관들이다. 여성의 노동을 아쉬울 때 돈 더 벌어오는 ‘여분의 인력’ 쯤으로 취급하는 사고방식이 깔려 있지 않았다면 그런 황당한 대책이 튀어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정부는 불과 1년여 전에 ‘경단녀(경력단절여성) 해소’를 국가적 과제로 들고 나왔다. 당시 현오석 경제부총리는 “제2 한강의 기적을 일으키기 위해선 여성의 경제 참여가 반드시 필요하다”며 시간선택제 일자리 창출에 주력하겠다고 했다. 경력단절여성의 재취업 문제 해결에 적극 나서겠다는 것이었다. 정권이 바뀐 것도 아니다. 도무지 회복 기미 없는 경제를 불 지피기 위해 일터로 끌어내려 했던 전업주부들이 1년여 만에 불필요한 어린이집 수요를 줄이기 위해 가정에 눌러 앉혀야 할 대상이 되어 버린 것이다.

이번 대책은 보육교사 폭행 사건이 터진 지 1주일여 만에 나왔다. 냄비 대책을 문제 삼는 이도 있다. 여론이 들끓으면 내놓는 냄비여도 탓하지 않겠다. 대책이 일관성만 있다면 말이다. 무개념만 아니라면 말이다. 그것도 여성이 대통령인 나라에서 나온 정부 대책이 아니라면 말이다.

손영옥 문화체육부 선임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