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오름의 이단아 단산,바굼지라 불리는 곳, 245개 계단 밟고 올라

입력 2015-01-29 02:02 수정 2015-01-29 18:44
날개를 편 박쥐를 닮은 단산.

제주 서남쪽에 위치한 ‘오름’들이 부쩍 주목을 받고 있다. 과거 다른 명소들에 묻혀 관심을 끌지 못했으나 ‘산방산-용머리해안 지질트레일’ 개장 이후 탐방객들을 불러모으고 있다.

제주 오름은 대부분 둥그스름한 부드러운 곡선을 이루고 있어 여성적이다. 하지만 서귀포시 안덕면 사계리의 단산(簞山·158m)은 뾰족한 모습을 하고 있어 거칠고 남성적이다. 제주 오름의 ‘이단아’라 불리는 이유다. 추사 김정희가 제주 유배 당시 자신의 심정을 묘사한 세한도(국보 180호)를 완성한 곳으로 전해진다.

제주 토박이들에게는 ‘바굼지오름’으로 불린다. ‘바굼지’는 바구니를 일컫는 제주토착어. 옛날 제주 들녘이 물에 잠겼을 때 오름이 바굼지만큼 물 위로 보였다는 전설에서 비롯됐다. 1900년대 이후 단산으로 불린 것으로 알려졌다.

단산의 ‘단’이 소쿠리를 뜻한다. 또 오름의 형세가 박쥐를 닮아 붙은 이름 ‘바구미’가 바굼지로 변했다는 설이 있다. 1㎞에 펼쳐진 단산을 멀리서 보면 가운데 둥근 형태의 안부 양쪽으로 바위 봉우리가 불쑥 솟은 모습이 날개를 활짝 편 박쥐의 모습과 빼닮았다.

바다였던 곳에서 폭발한 수성화산이나 응회구(엉겨 굳은 화산재 구덩이) 퇴적층이 수십만년에 걸쳐 침식되면서 원지형이 파괴돼 분화구의 일부만 남았기 때문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1530)에 파고산(把古山), 탐라순력도(1703)에 파군산(破軍山), 제주삼읍전도(1872)에 단산(簞山)으로 기재된 점 등으로 미뤄 ‘바구니’에 무게가 실린다.

가까이 다가서면 수직에 가까운 벼랑과 바위로 둘러싸여 있다. 동쪽 암봉은 ‘칼날바위’ 또는 ‘칼코쟁이’ 등으로 불릴 정도로 험해 오르기가 쉽지 않다.

오름 밑에서 정상을 거쳐 다시 내려오는 길은 약 1㎞ 남짓. 1시간 정도면 넉넉하다. 완만한 코스가 한동안 이어지다가 급경사가 눈앞에 다가선다. 목재 데크가 없으면 쉬운 길은 아니다.

245개의 계단을 올라 서봉 정상에 서면 풍광이 압권이다. 한 바퀴 돌 때마다 풍경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져 360도 회전 전망대가 따로 없다. 가까이로는 산방산이, 멀리로는 한라산이 눈앞에 입체적으로 펼쳐진다. 병악, 원수악, 정물오름, 금오름 등 제주 서부의 오름들이 한라산의 품에 안겨있는 듯하다.

시선을 돌리면 수평선과 맞닿은 제주의 청정 바다와 그 한복판에 자리잡고 있는 형제섬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가파도와 마라도도 시야에 들어온다. 송악산에 이어 일제 수탈의 역사적 현장인 알뜨르비행장과 모슬봉이 자리잡고 있다.

북쪽은 깎아지른 듯 직각에 가까운 절벽이고 남쪽도 상대적으로 완만할 뿐 여느 오름보다는 가파르다. 벼랑 아래로는 겨울에도 초록밭이 펼쳐지고 산방산 인근의 유채꽃밭도 보인다.

단산에는 일본군들이 강점기에 파놓았던 진지동굴도 있다. 왕복 10분가량 걸린다.

제주=글·사진 남호철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