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무 공무원, 포주보다 악랄했다

입력 2015-01-28 02:11

충북의 한 세무서 직원 A씨(35·8급)는 2012년 겨울 대전의 오피스텔 성매매업소에서 종업원 B씨(37)를 만났다. 처음엔 그저 손님과 성매매 업소 여종업원 관계였다. 하지만 A씨가 수시로 B씨의 업소를 찾으면서 개인적인 대화를 나눌 만큼 가까워졌다. 내성적인 성격의 A씨는 처음엔 B씨가 미혼인 줄 알고 여자친구처럼 대했다. 하지만 B씨에게 6살짜리 아이가 있고 이혼녀라는 사실을 뒤늦게 알고 사이가 나빠졌다.

그러던 중 B씨가 사채 이자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자 A씨는 자신이 돈을 빌려 주겠다고 제안했다. 이어 B씨는 2013년 7월부터 최근까지 A씨에게서 여러 차례 수백만원에서 1000만원까지 모두 4000여만원(이자 포함)을 빌렸다. 그리고 매달 원금과 연 40%에 달하는 이자를 갚겠다는 내용의 차용증을 써줬다. 또 차용증에 ‘제때 원금과 이자를 갚지 못하면 하루 동안 A씨 옆에 있으면서 원하는 것을 들어준다’는 내용의 각서도 썼다. 일종의 현대판 고리대금업에 따른 성노예 각서 형식이었다.

경찰 관계자는 “요즘 세상에서는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둘 사이에 벌어졌다”며 “B씨가 원금을 초과하는 3000만원 이상은 이미 갚았다”고 말했다.

이후 A씨는 각서 내용을 빌미로 B씨가 하루라도 돈을 제때 갚지 못하면 성관계를 요구했다. 이렇게 해서 한 달에 많게는 6차례나 성관계를 갖는 등 1년6개월여 동안 26차례 성관계를 했다고 경찰은 밝혔다.

A씨는 경찰 대질신문에서 결혼까지 생각한 좋은 사이였다고 말했으나 B씨는 결혼을 생각한 사람이 고액 이자와 각서까지 쓰게 했겠느냐며 거짓말이라고 반박했다.

경찰 조사에서 A씨가 전화와 문자메시지를 통해 ‘평생 노예로 살겠다고 하지 않았느냐’ ‘섬으로 팔려가고 싶으냐, 노예는 시키는 대로 하면 된다’며 협박을 일삼았던 사실도 드러났다.

고액 이자와 강제 성관계에 시달리던 B씨는 고통의 올가미를 벗어날 수 없다고 판단하고 지역 여성단체에 이런 사실을 알렸다. 이 단체는 지난해 11월 경찰에 수사를 요청했다.

경찰조사 결과 A씨는 B씨를 협박하는 과정에서 국세청 세무 전산망에 접속해 B씨의 개인정보까지 무단 열람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 관계자는 “국세청 직원이 상대를 협박하기 위해 불법으로 개인정보를 열람한 것은 매우 심각한 범죄행위”라고 말했다.

A씨는 B씨가 성관계를 거부하며 만나주지 않자 불법으로 취득한 개인정보를 근거로 “너의 가족이 어디에 사는지 알고 있다” “성매매 사실을 가족에게 폭로하겠다”고 겁을 줬다.

B씨는 “가족들에 대한 상세한 내용을 이야기하면서 성매매 사실 등을 알리겠다고 협박해 A씨의 요구를 거부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A씨는 경찰 조사에서 성관계를 맺거나 국세청 세무 전산망에 접속해 B씨의 개인정보를 알아낸 사실 등은 인정했다. 다만 성관계를 강요한 혐의 등에 대해서는 부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B씨는 경찰조사에서 “성매매를 하고 있기 때문에 처벌받는 게 두려워 경찰에 신고할 수 없었다”며 “집까지 찾아와 행패를 부려 시민단체의 도움으로 경찰에 신고하게 됐다”고 말했다.

A씨는 “B씨의 주장대로 갑을 관계는 아니었다”며 “여자가 돈을 갚지 않으려고 공무원인 나를 궁지에 몰아넣었다”고 말했다.

대전지방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는 지난해 말과 올해 초 A씨에 대해 강요죄와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혐의로 2차례 검찰에 구속지휘를 올렸으나 기각됐다. 경찰은 조만간 A씨를 불구속 송치할 방침이라고 27일 밝혔다.

대전=정재학 기자 jhjeo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