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축! ○○○ 서울대 합격’. 예나 지금이나 이맘 때 고등학교 정문 앞을 지나다 보면 이런 현수막이 흔히 눈에 띈다. 명문대 진학을 개천에서 용 나는 길로 여겼던 터라 학교나 지역 주민들은 이런 현수막을 자랑스러워했고, 지금도 그렇다.
그런데 이런 현수막이 학벌과 학력 차별을 조장한다는 비판도 함께 제기돼 왔다. ‘저는 대구 수성구에 사는 학부모입니다. 얼마 전 학교 교문에 나붙은 명문대 수석합격 현수막이 영 마음에 걸립니다. 공연히 1등, 수석을 강조해 전부가 아니면 전무(全無)라는 식의 입시 가치관을 심어주는 것 같아서입니다.’ 1992년 1월 23일 한 일간지에 이 같은 학부모 기고문이 실렸다.
23년이 흐른 지금도 이 논란은 계속되고 있다. 특목고는 물론 유명 사립 초등·중학교 합격을 알리는 현수막마저 등장하자 박수 대신 눈총을 보내는 경우도 많다. 악습이 되고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일선 학교에선 ‘입시 현수막’이 학생 성취욕을 고취시킨다고 본다. 서울의 한 고교 관계자는 “명문대 진학 내역을 알려 우수 학생을 유치하고, 새로 입학하는 신입생 및 학부모에게 자긍심과 자신감을 주기 위해 현수막을 건다”고 말했다. ‘학생 입학 상황 및 졸업생 진로 정보 공시’를 목적으로 게시하는 경우도 있다고 설명했다.
반면 교육 전문가들의 시선은 싸늘하다. 현수막이 우리 교육의 폐단을 더욱 단단하게 만든다고 말한다. 사단법인 학벌없는사회 김지애 사무처장은 “오로지 좋은 학교에 학생을 몇 명 보내는지 신경 쓰는 사이에 우리 사회에는 특권학교가 생기고, 입시 경쟁은 더욱 심해졌으며, 일반고 슬럼화가 진행됐다. 이제는 우리 사회에서 대학 입시가 어떤 의미를 갖는지 스스로 질문하며 변화를 모색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2012년 10월 전국 시·도교육감에게 일선 학교나 동문회의 현수막 등 입시 홍보물 게시를 지도·감독하라는 의견을 제시했다. 학벌 조장을 우려해서였다. 하지만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인권위가 대전 지역 학교들을 조사한 결과 2013년 한 해에만 이런 현수막이 7838개나 나붙었다. 학교당 평균 27.3개나 된다. 2013년부터 지난해까지 인권위 차별시정위원회에 접수된 ‘현수막 게시’ 관련 진정도 90건에 달했다.
인권위는 27일 “최근 특정 학교 합격을 알리는 현수막이 전국적으로 게시되고 있다. 학벌 차별문화 조성에 대한 우려를 표한다”고 성명을 냈다. 인권위 관계자는 “우리나라 아동·청소년이 스스로 평가하는 삶의 질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국 중 최하위이고, 삶의 질이 낮은 이유로 손꼽히는 항목이 ‘학업 스트레스’임을 고려했다”며 성명의 배경을 설명했다.
시·도교육청은 현수막에 관심을 갖겠다는 입장이다. 경기도교육청 교육과정진학과 담당자는 “대입 합격자 발표 기간에 일선 학교의 현수막 게시를 자제토록 요청하고, 홈페이지 등에도 입시 결과를 알리는 게시물을 올리지 않도록 점검하겠다”고 말했다.
양민철 기자 listen@kmib.co.kr
[생각해봅시다-인권위 ‘OO大 합격’ 현수막 우려 성명] 학업 권장? 학벌 조장!
입력 2015-01-28 03:10 수정 2015-01-28 15: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