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게 망가지기 시작한 건 2012년 12월이었다. ‘그 일’이 있기 전까진 다 순조로웠다.
서울아산병원 113병동 5호 병실에는 박양순(53·여)씨가 산다. 병상에 누워 있는 남편 김경옥(53)씨의 몸을 닦아주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28일이면 남편이 이 병원에 입원한 지 774일째. 아산병원 최장기 입원기록이다.
남편은 2006년 뺑소니 교통사고를 당해 뇌병변 1급 장애 판정을 받았다. 2년간 뇌사상태로 지냈다. 호텔 요리사였던 남편이 모아둔 돈은 금세 바닥났다. 입으로 음식을 삼키는 게 불가능해지면서 2007년 위에 직접 음식을 넣어주도록 관을 삽입하는 위루술을 받았다.
2008년 기적같이 남편이 의식을 회복했다. 주변에선 박씨의 정성이 그를 깨웠다고 했다. 눈을 뜬 남편의 회복 속도는 놀라웠다. 3년여 만에 간단한 질문엔 대답할 정도로 호전됐다. 박씨가 아들과 하는 대화를 듣고 희미하게 미소 짓기도 했다. 한 의사는 곧 입으로 식사해도 되겠다고 말할 정도였다. 박씨는 남편이 그렇게 가족에게 돌아올 줄 알았다.
재활에 힘쓰던 김씨가 아산병원을 찾은 건 2012년 12월 16일. 위루관 주변이 빨갛게 부어올랐다. 세균에 감염됐다고 했다. 담당 의사는 한번 감염된 관은 다시 감염될 가능성이 높으니 관을 교체하자고 조언했다. 박씨도 동의했다. 이 결정을 지금 박씨는 뼈저리게 후회하고 있다.
새로 관을 삽입한 뒤 남편이 소화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 걱정됐지만 수술 후 초기 단계라 일시적 마비로 그럴 수 있다는 설명을 듣고 조금 더 지켜봤다. 병원비를 내고 퇴원 준비도 했다. 그러나 김씨의 상태는 시간이 지나도 나아지지 않았다. 일주일 정도로 예상했던 입원기간은 그렇게 하루하루 늘어가기 시작했다. 열이 오르면서 흡인성 폐렴으로 번졌고 복압도 상승해 음식 섭취도 중단됐다.
새로 삽입한 관이 자주 빠지면서 1년 새 위루관 교환술만 6번을 했다. 그 사이 진단명은 장폐색증으로 바뀌었다. 박씨는 “남편이 (전처럼) 돌아올 거라는 말을 수차례 들었지만 증세는 계속 악화됐다. 나중엔 ‘위로는 더 이상 음식물 섭취가 어려우니 장에다 관을 삽입하자’고 하더라”고 말했다.
장에 관을 넣게 되면 음식물을 ‘먹을’ 순 있으나 주입 및 소화 시간이 오래 걸려 하루 대부분을 누워서 생활해야 한다. 재활은 꿈도 못 꾼다. 박씨는 이번엔 의사의 제안을 거절했다. 그는 “남편이 2007년 위루술을 받았지만 지금껏 소화에 문제가 없었다”며 “예전처럼 지낼 수 있게 회복시켜 달라”고 병원 측에 요구했다.
이 결정의 대가는 컸다. 보전 치료 외에 병원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그렇게 입원 기간이 길어지자 병원 측은 2013년 10월 의료분쟁조정중재원에 조정·중재 신청을 냈다. 박씨 부부가 병원비를 내지 않은 채 퇴원도 안 하고 있다는 게 이유였다. 중재원은 ‘병원의 과실이 없다’고 판정했다. 병원 관계자는 “환자의 경우 뇌병변 1급 장애를 갖고 있어 위·장의 기능이 떨어져 있었다”며 “환자 보호자가 주장하는 부분은 치료 과정에서 생길 수 있는 것이지 병원의 과실은 아니다”고 말했다.
병원 측은 중재원 결과에 따라 2014년 3월 박씨 측을 상대로 병상 명도 및 진료비 청구 소송을 내 승소했다. 법원은 지난 15일 이 부부에게 퇴거 명령을 내렸고, 병원은 29일까지 병실을 비워 달라고 했다. 병원 관계자는 “1·2차 병원에서도 충분히 김씨를 치료할 수 있다. 병실의 선순환을 위해 어쩔 수 없는 조치”라고 말했다.
현재 김씨의 상태는 2년 전과 같다. 영양제로 하루하루를 버텨가고 있다. 박씨는 병실을 떠나기가 두렵다고 한다. “시간을 되돌리고 싶어요. 2012년 ‘그때’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박씨가 내야 할 병원비는 2억원이 좀 넘는다. 8개월 전부터는 상조회사에 취직해 일과 병간호를 동시에 하고 있다.
황인호 기자 inhovator@kmib.co.kr
‘774일’ 아산병원 최장기 입원환자 병실 비우라는데…
입력 2015-01-28 02: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