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김준동] 아시안컵, 그 후 55년

입력 2015-01-28 02:10

아시안컵은 AFC(아시아축구연맹)가 주관하는 ‘아시아의 월드컵’이다. 4년마다 열리는 이 대회는 1956년 홍콩에서 처음 개최됐다. 예선을 통과한 한국 이스라엘 홍콩 베트남 등 4개국이 참가한 제1회 대회에서 한국은 2승1무로 초대 챔피언에 등극했다. 금의환향한 선수단은 이승만 대통령의 초청으로 경무대(현 청와대)까지 방문하는 등 국민적인 영웅으로 대접받았다.

제2회 대회는 한국이 유치했다. 1959년 6월 유치가 확정되자 이승만 대통령은 효창공원에 축구경기장을 짓도록 지시했다. 당시 대한체육회장을 겸직했던 이기붕 민의원 의장을 위원장으로 ‘국제축구경기장건설위원회’가 한 달 뒤 구성됐다. 효창공원 내 2만5858㎡(약 7822평)의 부지가 확보됐고 그해 11월 착공에 들어갔다. 이듬해 10월 12일 완공됐지만 이 대통령과 이 의장은 개장 기념으로 이날 열린 경평 OB전에는 모습을 드러낼 수 없었다. 4·19혁명으로 이 대통령은 권좌에서 물러나 하와이로 떠났고, 이 의장은 경무대에서 맏아들 강석의 권총에 맞아 숨졌다.

이런 우여곡절을 뒤로하고 이틀 뒤 윤보선 대통령의 개막 선언으로 국내 첫 아시안컵 팡파르가 효창운동장에 울려 퍼졌다. 본선 참가국은 한국 이스라엘 대만 베트남 등 4개국이었다. 한국은 ‘드리블의 마술사’로 불렸던 조윤옥(4골)과 ‘강철 심장’의 대명사우상권(2골)의 활약으로 3전 전승으로 대회 2연패를 달성했다. ‘아사아의 맹주’ 자리에 우뚝 선 것이다.

하지만 영원할 줄 알았던 이 영광은 더 이상 찾아오지 않았다. 그사이 일본은 통산 4회 우승으로 아시아 넘버원 자리를 꿰찬 반면 한국은 ‘종이호랑이’로 전락했다. 이회택 차범근 최순호 황선홍 홍명보 김주성 안정환 박지성이란 걸출한 ‘코리안 스타’도 이 한(恨) 맺힌 대회에서는 조연에 불과했다. 마지막 우승 후 강산이 다섯 번도 더 변한 지금 후배 태극전사들이 제16회 호주대회에서 다시 한번 정상에 도전한다. 31일 결승전에서 독일 출신 울리 슈틸리케 감독이 어떤 마법으로 한국 축구 55년의 한을 풀어낼지 관심이다.

김준동 논설위원 jd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