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크로드 답사를 목적으로 한 인도 여행에 참여한 적이 있다. 우리는 유명한 장소를 돌고 돌았다. 특히 관광객이 붐볐던 타지마할에서는 아름다움보다는 사람들의 희생이 먼저 느껴졌다. 나는 어떤 거대함에 지쳤다. 그래서 종종 일행과 떨어져 바닥에 주저앉곤 했다. 한번은 그 옆으로 인도 사람들이 하나둘 앉기 시작했다. 일행 중 누군가가 웃으며 말했다. “다니다보면 어느새 현지인들 틈에 잘 섞여 있네. 자칫하면 못 찾겠는데?”
나도 함께 웃었다. 그때 옆에 앉은 할머니와 눈이 마주쳤다. 작은 곰 인형을 본 것이다. 핸드메이드 인형인데 여행 때 심심찮게 가지고 다녔다. 말이 통하지 않는 나라에서 그 인형은 뜻밖의 역할을 했다. 할머니는 손짓으로 인형을 가리켰다. 나는 ‘귀엽죠?’ 하는 표정을 지었지만 그 뜻이 통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할머니는 옆에 앉은 아줌마를 불렀다. 우리 셋은 손짓과 표정으로 이야기했고 그러면서 할머니가 여든이고 쉰이 넘은 아줌마가 할머니의 딸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그곳을 떠나기 전, 나는 곰 인형을 안고 있는 할머니와 딸을 카메라에 담았다.
이런 일도 있었다. 일행들은 유적지를 둘러보고 나는 나무 옆에 앉아 있었다. 그때 한 꼬마가 ‘다람쥐’와 숨바꼭질하는 것을 발견했다.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그만 인도 가족들에 둘러싸였다. 나는 여전히 다람쥐에게 마음이 가 있는 아이를 가리키며 이름을 물었다. 아이 아버지로 보이는 사람이 힌두어로 말한 후 영어로 뜻을 알려줬다. “World.” 참 좋은 뜻이라 했더니 그는 “She is my world”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람쥐를 쫓던 소녀 역시 나의 카메라에 담았다.
이따금 그 사진들을 꺼내보며 생각한다. 여든 넘은 어머니와 손잡고 여행하던 아줌마는 자기 딸과도 그렇게 지내겠지, 다람쥐 소녀의 아버지는 딸을 세상이라 여기며 키우겠지.
이렇듯 개개인의 이야기에는 특별한 사연이 담겨 있다. 한 소녀가 아버지의 세상이듯, 우리 또한 누군가의 세상일 테니 말이다. 하지만 우리는 점점 나의 세상만 알고 그들의 세상은 알려고 들지 않는다. 무엇이 우리를 그렇게 만들었을까.
곽효정(에세이스트)
[살며 사랑하며-곽효정] 당신도 누군가의 세상일 테니…
입력 2015-01-28 02: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