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적 장애 언니 돌보던 20대 슬픈 선택

입력 2015-01-27 05:21
“할 만큼 했는데 지쳤습니다. 내가 죽더라도 언니는 좋은 시설보호소에 보내주세요. 장기는 다 기증하고 월세 보증금도 사회에 환원하길 바랍니다.”

지적장애를 가진 언니를 돌보던 20대 여성이 힘겨운 삶을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휴대전화 메시지에는 짧은 유서를 남겼다. 마지막 삶의 끈을 놓을 때까지 친언니를 걱정하며 “언니를 좋은 보호시설로 보내 달라”고 당부하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류모(28·여)씨는 지난 24일 오전 10시쯤 대구 수성구 한 식당에 주차된 승용차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차 안에는 번개탄을 피운 흔적이 발견됐다.

류씨는 어린시절부터 지적장애 1급인 언니(31)의 보호자 역할을 해왔다. 류씨가 두 살 정도 됐을 때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뒤 어머니도 재가해 소식이 끊겼다. 이후 할머니가 류씨와 언니를 키웠다. 2000년 8월 언니가 기초생활 수급대상자로 선정돼 복지 혜택을 받았으나 류씨의 삶은 나아지지 않았다.

그러던 중 2007년 언니가 갑자기 집을 나갔다. 수소문 끝에 부산의 한 시설에서 언니를 찾은 후부터 류씨는 혼자 일하며 시간이 날 때마다 언니를 찾아갔다. 언니는 류씨와 함께 있는 게 좋다며 대구에 돌아가 살고 싶다고 보챘다. 결국 2012년 언니를 대구의 한 보호시설로 옮겼다. 대구에서도 언니를 찾아와 돌봐주는 건 류씨였다.

불쌍한 언니가 안타까워 이달 초부터 대구 남구의 월세 36만원짜리 원룸에서 같이 살기 시작했다. 대구 시설에서 생활하던 언니가 정신질환 증세까지 보이는 등 상태가 악화됐고 류씨와 함께 지내길 간절히 원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후 류씨는 삶에 지쳤는지 수차례 언니와 함께 동반 자살을 시도했다. 지난 20일에도 방안에서 언니와 함께 자살을 시도했지만 언니가 소리를 질러 사람들이 오는 바람에 생명을 건졌다.

경찰 관계자는 “조사를 위해 류씨 언니와 대화를 나눠봤지만 자세한 내용을 들을 수 있을 정도의 지적 능력은 없었다”며 “류씨는 두 달 치 월세가 밀리는 등 형편이 어려워진 데다 언니 상태까지 안 좋아져 힘들었던 것 같다”고 밝혔다. 류씨의 언니는 광주에 있는 삼촌이 보호하고 있다.

대구=최일영 기자 mc102@kmib.co.kr